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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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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눈에 밟힌다- 박종훈(경상남도교육감)

  • 기사입력 : 2015-05-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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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넓어지면 생각의 품도 넉넉해지고 보는 눈도 깊어지나 봅니다. 외손자, 외손녀를 둔 할아버지의 눈에는 집안의 살림과 식구들의 삶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아이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것이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까지 챙겨야 하므로 성가실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놀라움과 환희를 느낄 때가 훨씬 더 많아집니다. 행복을 안고 찾아온 이 인연에 감격할 때가 많습니다.

    ‘눈에 밟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발도 아닌 눈에 무엇이 밟히다니 참 묘한 표현입니다. 발에 무엇이 밟히면 머뭇거리게 되고, 그러면 쉬 떠날 수 없겠지요. 그렇듯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것을 모른 체하고 떠나기는 힘들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차마 떨칠 수 없는 도타운 정이 이 감각적인 말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눈 감아도 눈에 밟혀 그만 발걸음을 돌리는 그 마음과 애써 눈감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심정의 차이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차이이고, 교육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자녀로 하여금 능력을 갖추게 하여 힘든 현실 속에서 우뚝 서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육영(育英) 태도와 지금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지켜 주고 싶은 할아버지의 양육(養育) 태도가 프리즘의 눈을 스치며 가르침과 돌봄이라는 다른 빛깔의 스펙트럼으로 나눠지는 것이지요.

    눈길 하나는 미래를 먼저 바라보고, 다른 눈길은 지금 여기에 먼저 가 있습니다. 교육이 미래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할 때 아버지들의 태도가 바람직해 보이지만, 할아버지들의 눈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아이가 커서 누릴 것도 행복이라면, 지금의 행복을 줄여서까지 나중의 행복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능력을 길러주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게 될 인생의 행복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보다 결코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아이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은 생리적 현상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경륜이 불러온 세계관 때문입니다. 조금 키워서 말하면 철학적 성찰의 결과입니다.

    인생의 궁극적 가치를 행복에 둔다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지금의 행복을 한껏 누려야 하고, 행복해지도록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훈육은 반듯한 어린이로 키울지는 몰라도 따뜻한 어린이로 키우지는 못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남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라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사랑을 베푸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우리는 평화를 꿈꾸면서도 평화의 씨앗을 뿌릴 줄 모릅니다. 세상의 평화는 사람들이 만듭니다. 평화를 일궈 낼 사람들이 지금 자라나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평화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이미 집안과 세상에 화평의 불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어린이들로부터 더 큰 위안을 받고 행복을 느낍니다. 더불어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날지 못하는 물오리는 없습니다. 어미의 가르침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워 날 줄 압니다. 어린이들도 본받으며 자랍니다. 기다릴 줄 아는 여유 속에서 어린이들의 정서가 안정됩니다. 마음이 좁으면 조바심을 내고, 넓어지면 기다림이 깃듭니다. 그런 마음을 만드는 바탕은 눈에 밟히는 그 살가운 사랑입니다.

    내일은 어린이날입니다. 그토록 반겼던 당신의 복덩이가 새삼 눈에 밟혀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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