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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애국지사 손양원 생가복원 의미- 배성호(사회2부 국장대우)

  • 기사입력 : 2014-06-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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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군은 칠원면 출신 손양원 애국지사의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을 위해 사업비 52억원(국비 11억7000만원, 도비 8억6000만원, 군비 29억7000만원, 기념사업회 2억원)을 들여 3655㎡의 부지에 생가 30㎡를 복원하고,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전시장 및 기념품 매장,사무실 등을 갖춘 기념관(727㎡)을 오는 12월께 완공키로 했다.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은 1910년 부친과 함께 그리스도교에 입교해 1917년 맹호은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1923년 일본 스가모중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해 1929년 경남성경학교를 졸업했으며, 1934년부터 밀양·울산·부산 등지의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했다.

    1938년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여수의 나병환자 수용소인 애양원 교회에 부임해 나환자에 대한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여수경찰서에 구금된 후 8·15광복으로 출옥해 1946년 목사가 됐다. 특히 1948년 여수·순천사건으로 동인·동신 등 두 아들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으나, 사태 진압 후 가해자들의 구명을 탄원하는 등 원수를 양자로 삼아 세상을 감복시켰다.

    또 6·25전쟁이 일어나자 동료와 신도들의 피란 권유를 거절하고, 행동이 부자유한 나환자들과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포장이 없는 손양원의 삶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는 기념관은 모두(咸) 어우러지는(愛) 동산(園)인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기념관엔 죽음을 예감하면서 그 길을 걸어간 손양원의 고통과 신념의 ‘순교의 길’, 세상과 단절된 고립 공간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옥고의 고통’,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한 ‘애향원과의 사랑’, 아들을 잃은 아픔에 용서와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용서와 감사’, 성장기 손양원에게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의 존재 ‘생애의 시작’ 등의 시설을 갖춰 군민들이 다양한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다.

    손양원 기념사업회 이만열 이사장은 “손양원 생가와 기념관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며 “오늘날 혈연·지연·학연과 이념으로 분열되고, 갈등과 투쟁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용서와 화해, 평화를 상징하는 귀한 성지가 돼 그의 사랑과 화해의 정신이 이곳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로 널리 꽃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양원 애국지사 생가 및 기념관 건립으로 군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소·고발을 없애고, 소 한 마리로 이웃간에 다투지 않는 정이 넘치는 살고 싶은 함안을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해 본다.

    배성호 사회2부 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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