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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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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수찬국사(修撰國史)- 나라의 역사를 편찬하다

  • 기사입력 : 2013-07-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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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수찬국사(修撰國史)- 나라의 역사를 편찬하다


    흔히 오늘날은 민주주의시대라 모든 일이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시대(朝鮮時代)는 봉건적(封建的)인 전제군주시대(專制君主時代)라고 여겨 오늘날보다 덜 발달한 시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국왕이 혼자서 멋대로 정치를 하던 시대가 아니었고, 정치체제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보다도 더 앞선 분야도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역사 편찬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高麗) 후기에 실록을 편찬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편찬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세계 역사상 가장 잘 편찬된 실록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실록은 사관(史官)이 사초(史草)를 작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사관은 사초를 작성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고, 때로는 다른 부서에 파견돼 각 부서에서 시행한 일을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흔히 사관이라 하지만 정식 관직 명칭은 아니고, 춘추관(春秋館) 소속의 기사관(記事官)을 일컫는 말인데, 실제로는 겸직으로 예문관(藝文館) 소속의 팔한림(八翰林)을 사관이라 일컫는다. 팔한림이란 정7품의 예문관 봉교(奉敎) 2인, 정8품 대교(待敎) 2인, 정9품 검열(檢閱) 4인을 말한다.

    국왕이 승하하면 즉각 실록청(實錄廳)을 열고, 시정기와 함께 가장사초를 기한을 정해 제출받고, 또 각 기관에서 제출하는 등록(謄錄)과 기타 참고될 만한 공사문서들을 모아 실록을 편찬하게 된다.

    사초 등 각종 자료를 취사선택해 1차로 ‘실록’을 편찬한다. 이를 다시 수정해 수정본을 만들고, 수정본을 다시 수정해 완성된 실록을 만들어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5벌을 만들어 춘추관과 오대산 등 각 지역의 사고(史庫)에 보관했다.

    이렇게 편찬된 ‘실록’은 국왕이라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을 상고하기 위해서 꼭 봐야 할 경우에는 회의를 거쳐 지정된 관원만이 볼 수 있었다.

    사관은 엄정한 직필(直筆)로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한다. 중종 때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난 날 밤에 남곤(南袞) 일파와 중종 간의 대화를 중종이 사초에 적지 말라고 했는데, 사관은 ‘임금님께서 사관에게 이 말은 적지 말라고 했다’라는 말까지 적어 놓았다.

    권력자가 역사를 고치려고 하면 말릴 수 없고, 권력자가 역사를 고치려고 하면 사관이 강직하게 될 수가 없으니 왜곡되고 미화된 역사만 남을 것이니, 올바른 역사가 될 수가 없다.

    역사는 앞 시대 사실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니고, 후세에 교훈을 남겨 후세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왜곡되고 미화된 역사는 교훈을 줄 수가 없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에 얽매여 기록을 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작 기록을 보려니 기록이 없다. 집권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기록만 남기고 불리한 기록은 없앨 수 있다면 어떻게 국가의 역사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낮춰 보던 조선왕조시대의 역사 편찬 방식과 역사 보관 방식을 배워야 하겠다.

    * 修 : 닦을 수. * 撰 : 지을 찬. * 國 : 나라 국. * 史 : 사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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