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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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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 자화자찬(自畵自讚)- 자기 그림을 자기가 칭찬하다. 스스로 자기 자랑을 하다.

  • 기사입력 : 2013-07-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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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고을원이나 관찰사를 지낸 사람들을 위해 세워진 송덕비(頌德碑), 공덕비(功德碑), 선정비(善政碑) 등이 아직까지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공덕비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역사에 이름이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공덕비가 세워진 인물이라고 해서 꼭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은 부임하자마자 자기 밑의 아전들을 시켜 공덕비를 세울 돈을 모으게 한다. 고을원이나 관찰사는 권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으니까 거기에 아첨하는 그 지역의 유력한 사람이 반드시 나선다. 그래서 탐관오리가 떠날 때는 송덕비가 세워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탐관오리로 동학혁명을 유발시킨 조병갑(趙秉甲)도 선정비가 서 있고, 친일 앞잡이 이지용(李址鎔)의 선정비도 합천 해인사 입구에 서 있다.

    경북 안동 고을에는 송덕비나 선정비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앞 시대 사람들이 함부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감히 세울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덕비가 필요 없는 것이란 말은 아니다. 꼭 세워야 할 사람을 위해서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 들어 다시 여러 곳에서 공덕비가 많이 서고 있다.

    성균관에는 성균관장 아래 부관장이 15명 정도 있다. 전에 어떤 분이 성균관장 할 때 그 관장과 같이 부관장 한 사람들이 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다가, 얼마 지난 뒤 각자 자기 출신 고향에다가 자신들의 공덕비를 세우기로 결의했다.

    반발한 몇 사람 때문에 다 세우지는 못했지만, 상당수 부관장 출신들이 자신의 고향에 자기 돈 들여 공덕비를 세웠다. 그들이 무슨 공덕이 있는지 모르겠다.

    요즈음 각 고을 향교의 전교(典校)들이 전교 임기를 마치거나 재임 중에 자신들의 공덕비를 향교에 세운다. 내용인즉 “향교 건물을 새로 중수하고 담을 새로 쌓고…”라는 것인데, 향교를 책임진 전교라면 이 정도의 일은 공덕이 아니라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임무가 아니겠는가?

    어떤 향교에서는 전교의 공덕비를 세웠다가 그 전교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향교의 유림들이 금방 빼어내 버렸다. 세울 때 세우지 말도록 해야지, 세울 때는 가만 있다가 그 사람이 죽고 나서 비를 빼어버리는 것은 공덕비를 세울 가치가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 사람이 전교로 있을 때는 동조해서 공덕비를 세우는 데 동참했다가 그 사람이 죽자마자 바로 비석을 뽑아버리는 유림들의 마음가짐도 문제다. 세워서는 안 되는 비석은 세워서는 안 된다고 사전에 이야기를 해서 제지해야 옳은 일이다.

    비석이란 것은 본래 여러 사람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인격이나 공덕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세우는 것이지, 흠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자기 PR시대라 하지만 공덕비 등은 신중히 생각해서 꼭 세울 만한 사람일 때 세워야 한다. 말썽이 생길 비석은 애초에 세우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다.

    * 自 : 스스로 자. * 畵 : 그림 화.

    * 讚 : 칭찬할 찬.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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