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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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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 역래순수(逆來順受)- 뜻대로 안 되는 상황이 닥쳐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 기사입력 : 2012-11-1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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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속담에 ‘잘되면 자기 덕,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 잘되면 자기가 잘해서 잘되는 줄 알고, 부모형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잘 안 될 경우에 자기에게서 문제를 찾아 고치려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원망한다.

    자신을 성찰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해야지, 원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자기가 태어난 집안, 가난하고 무식한 부모, 출신 지역, 출신 학교 등등, 심지어 출신 학교 선생들까지도 원망한다. 그러나 좋은 가문, 좋은 부모, 명문대학 나왔다고 다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이다. 가히 세계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 세계 사람이 다 알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었지만, 처신도 아주 바르게 겸손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배우고자 한다.

    그는 명문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조상은 남의 집 노비였다. 조선 중중(中宗) 때 반석평(潘碩枰 : 1472~1540)이란 분이다. 그는 서울에 살던 이참판댁의 종이었다. 반석평이 어렸을 때 자기 또래인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독선생(獨先生)을 모셔놓고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 반석평은 너무나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신분으로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멀리서 글 가르치는 소리만 듣고도 배우는 내용을 다 알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혼자 땅바닥에 썼다. 그러다가 주인에게 들켜 꾸중을 듣기도 했다.

    어느 날 이참판의 다리를 주무르면서 머릿속으로 글 내용을 생각하다가 건성으로 다리를 주물렀다. 주인이 호통을 쳤다. 그때 반석평은 용기를 내어 그동안의 사실을 다 이야기했다. 이참판은 반석평의 노비문서를 불살라 신분을 해방시켜 후손이 없는 친척집에 양자로 들어가게 해 주었다. 반석평은 계속 글 공부를 열심히 해서 1507년(중종 2) 과거시험에 합격하였다. 내외의 여러 벼슬을 거쳐 법무부장관 격인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이르렀다.

    어느 날 초헌을 타고 입궐하다가 길에서 어떤 거지를 발견했다. 옛날 자기가 노비로 있던 이참판의 아들 이오성이었다. 반석평은 임금에게 자신이 본래 노비였는데, 신분을 속였다고 실토하고 처벌해 달라고 상소를 올렸다. 주인이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신분을 해방시켜 주었으니, 처벌받을 일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까 두려워 거지가 된 주인집 아들을 보고 알은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왕은 그를 가상히 여겨 처벌하지 않았고, 주인집 아들 이오성에게도 사옹원(司饔院) 별제(別提)라는 벼슬을 내려 주었다.

    반석평은 조선 팔도의 감사를 전부 다 역임하였고, 나중에는 부총리 급인 좌찬성(左贊成)에까지 이르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장절공(壯節公)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지만, 반석평의 신분을 두고 당시 같이 벼슬하던 사람들이 여러 차례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겸손하고 신중하였다. 그리하여 자기 손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반씨 집안의 중시조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한 번 하기도 어려운데, 한 번 더 재임이 되었다. 재임될 때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반기문 총장의 인품이나 능력을 192개국 유엔회원국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것이다. ‘그 조상에 그 후손’이라 할 만하다.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조상과 후손이다. 부모형제로부터 시작해서 온갖 것을 탓하고 핑계 대던 사람들은 마음을 고쳐먹으면 좋겠다.

    * 逆 : 거스를 역. * 來 : 올 래.

    * 順 : 따를 순. * 受 : 받을 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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