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5일 (수)
전체메뉴

(456) 진물지량(鎭物之量)- 사물을 진정시키는 도량

  • 기사입력 : 2012-11-06 01:00:00
  •   



  • 조선 세종대왕 때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정승이 있으니, 곧 방촌(尨村) 황희(黃喜) 정승이다.

    이 분은 관대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하루는 여종 둘이 한참 싸우다가 한 여종이 달려와 “저 애가 매우 간악합니다”라고 하자, 황 정승이 “네 말이 옳구나”라고 했다. 그 여종이 보란 듯이 득의양양해지자, 다른 여종이 쪼르르 달려와 “저 애가 아주 못됐습니다. 억울합니다”라고 하자, “네 말도 옳다”라고 했다. 옆에 있던 조카가 못마땅해하면서, “숙부님은 너무 흐릿하십니다. 저 여종은 옳고 이 여종은 잘못한 것 아닙니까?”라고 따지자, “네 말도 옳네”라고 했다. 모두가 웃고 말았다.

    부하 직원이 와서 일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여종이 술상을 차려와 들이려 하자, 황 정승이 “조금만 기다려라”라고 했다. 여종이 한참 내려다보고 있다가 사나운 목소리로 “왜 이리 꾸물거리는 거요?”라고 하자, 그럼 “들여라”라고 했다. 들이자 안주를 옆에 있던 종의 아이들이 다 집어가 버렸다.

    황 정승이 식사할 때면 종의 아이들이 다퉈 몰려왔는데, 정승이 밥을 덜어 나눠 주고서 떠들며 먹는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노비들이 잘못이 있어도 매를 가하지 않고 타이르면서 “노비들도 역시 하늘이 낸 백성들이다”라고 했다.

    뜰 가에 있는 복숭아 나무의 복숭아가 익자 이웃 애들이 몰래 들어와 따갔다. 정승이 “다 따가지는 말아라. 나도 맛 좀 봐야지”라고 했다.

    그러나 늘 이렇게 관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국가의 큰일을 결정할 때는 강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태종(太宗)이 세자 양녕대군(讓寧大君)을 폐위하고 충녕대군(忠寧大君 : 훗날의 세종)을 세우려고 했을 적에, “나라의 근본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라고 반대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살이를 했다.

    언젠가 황희 등 대신들이 점심도 먹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정무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김종서가 병조(兵曹)의 곡식으로 점심상을 차려 올렸더니, 황 정승이 화를 내며, “어디 대신의 결재도 없이 함부로 나라의 곡식을 축내느냐?”고 혼을 내주었다. 그 뒤 김종서가 개인 재물로 점심을 준비하자, 황 정승이 이번에는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화를 내었다. 김종서가 앉아 있는 자세가 조금 비뚤자, 황 정승은 목수를 불러 자리를 고쳐주라고 하자, 김종서가 자세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같이 정승으로 있던 맹사성(孟思誠)이 “김종서 같은 사람은 나라의 인재인데, 대감께서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자, 황 정승은, “앞으로 우리들의 자리를 맡을 사람은 바로 김종서요. 그는 재주가 있고 힘이 있기 때문에 교만하고 일을 멋대로 하오. 그냥두면 큰일을 낼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그를 단련시키는 거요”라고 했다. 그제야 맹 정승이 황 정승의 큰 뜻을 알고 감복했다.

    황희 정승은 조그만 일은 관대하게 넘어가지만, 큰일은 엄정하게 바로 처리했으니, 사물의 경중을 아는 사람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만 옳다고 생각해 너무 따지다 보니, 갈가리 찢겨져 있다. 작은 것은 따지면서 정작 큰일은 원칙도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자기는 원칙도 없이 처신하면서 남의 일은 철저히 따지는 사람이 많다. 웬만한 것은 이해하여 참고 화합하는 것이 좋겠다. 반면 큰일은 원칙에 맞게 처리해 나가도록 노력해야겠다.

    *鎭 : 누를 진. *物 : 만물 물.

    *之 : 갈 지, …의. *量 : 헤아릴 량.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