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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무용장성(無用長城)- 쓸모없는 만리장성

  • 기사입력 : 2012-10-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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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1973년부터 1976년까지 3년간 동부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예비전투부대, 연대본부, 대대본부 등에 근무했기 때문에 제대하기 직전까지 철책선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철책선이 어떻게 생겼고, GP가 무엇이고, GOP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제대하기 얼마 전에 특별히 요청해서 보급차를 타고 최전방 철책선과 병사들의 벙커 등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철조망은 5m 간격으로 3m 높이의 Y자형 철봉 기둥에 철망을 쳤는데 기둥의 끝 부분은 양쪽으로 갈라져 사람이 기어오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 위에 원형으로 감긴 철조망을 얹어 놓아 사람이 타고 넘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철망은 그물처럼 되어 있기에 쇠 절단용 가위로 자르면 금방 분해되어 내린다 하여, 1980년대 초반에 다시 판으로 찍어 구멍을 낸 판망(板網)으로 바꾸었다.

    두 명의 병사가 한 조가 되어 철책선 앞을 지키는데, 한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적진을 살피고, 한 사람은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이상한 징후를 살피며, 양쪽 옆의 조와 연락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가 봤을 때, 병사들이 앉아서 총을 내려놓고서 책을 보거나 다른 짓을 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렇게 해이된 자세로 근무를 서는 원인은, 155마일 철책선 가운데 북한군이 설마 내 근무지역에 침투하겠느냐는 생각에서였고, 또 밤에는 근무 서고 낮에는 자도록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밤낮 없이 근무를 서게 하거나 일을 시키니, 병사로서도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지난 9월 9일 북한 민간인이 철책선을 넘어 강화도에 숨어 있다가 6일 만에 민간인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 해병대에 넘겨졌다. 그동안 강화도에 주둔하는 천하무적이라는 해병부대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달 2일에는 동부전선에서 북한군 병사가 아무런 제지 없이 철책선을 넘어와 GOP 막사까지 와서 문을 두드린 뒤에야 안에 있던 병사들이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6일에는 파주에서 북한군 병사가 아무런 제지 없이 철책선을 넘어왔다.

    철책선에는 철책선 이외에도 지뢰, 탐조등, CCTV 등 영상기기, 로봇 감시장치 등이 있어 그냥 지나가라고 해도 못 지나갈 형편인데, 북한병사는 유유히 통과하여 대담하게 병사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더 문제는 고질적인 허위보고다. 해당 부대에서는 CCTV를 보고 귀순의사를 알고 귀순조치시켰다고 보고했는데, 국군 최고지휘자까지 그대로 믿었다. 4년 전에도 북한군 장교가 제 발로 초소를 찾았는데, 보초병들이 자신들이 귀순을 유도했다고 보고하여 포상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운용하는 사람이 사명감을 갖고 경계를 철저히 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병역의무제도를 철폐하고, 숫자를 줄이더라도 모든 군인들을 직업군인화하여 대우를 잘해야 한다. 그래야 의지도 생기고 책임감도 있고, 전투에 숙달될 수가 있는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진나라는 그 아들 대에 통일한 지 15년 만에 망했다. 가혹하게 고생시키는 상급자들을 위해서 충성할 마음을 가진 병사가 있기 어렵다. 만리장성을 믿었지만, 만리장성이 나라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소용없는 만리장성’이라는 말이 나왔다.

    철책선 장비를 아무리 현대화해도 별 소용없고, 병사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나아가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는 국민 전체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

    * 無 : 없을 무. * 用 : 쓸 용. * 長 : 길 장. * 城 : 재(성) 성.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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