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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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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 비아부화(飛蛾赴火)- 나는 나방이 불로 달려든다

  • 기사입력 : 2012-10-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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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와 나방은 어떻게 다를까? 옛날에는 어떤 지방에서는 나비라 부르고 어떤 지방에서는 나방이라 불렀는데, 1930년대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서 표준말을 정할 때, 사람에게 해가 없는 것은 나비, 사람에게 해가 있는 것은 나방이라고 구분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나방은 대부분 밤에 활동하는데, 거꾸로 빛을 좋아한다. 그래서 빛을 보면 마냥 달려든다. 옛날 시골에서 밤에 논 가운데 등불을 달아놓은 것이 있었다. 그 밑에는 기름을 탄 물통을 달아놓았는데, 달려온 나방들이 등불에 부딪쳤다가 그 물에 빠지면 기름막 때문에 숨을 못 쉬어 죽게 만들어 둔 것이다. 한자어로는 ‘유충등(誘蟲燈)’이라 하고, 우리말로는 ‘나방꾐등’, ‘꾐등불’이라고 하였다. 하룻밤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방이나 벌레들이 빠져 죽으니, 농약값 안 들이고 해충을 제거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자기 죽을 줄 모르고 뛰어드는 사람을 ‘불나비’, ‘부나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통령선거가 가까워 오고 있고, 세 명의 대선후보가 부각되고 있다. 각 후보의 캠프에는 자천타천으로 교수들이 많이 모여들어 여러 가지 임무를 맡고 있다. 자기가 도와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교수는, 장관, 비서관, 특별보좌관, 아니면 국가에서 설립한 연구기관의 책임자, 국립대학교 총장 등등을 맡아 자기의 경륜을 펴고 이름을 날릴 수가 있다.

    교수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겠다고 교수가 되었다. 연구한 결과를 논문과 저서로 발표하여 국가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본업이다. 사회봉사라 하여 각종 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강연 등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한다. 그러나 본분은 어디까지나 연구와 교육이다.

    그러나 나이 50이 가까이 되어, 학문적으로도 별 업적을 못 내어 학자로서 명성을 얻기 어려울 때, 친구들 가운데 장관도 나오고 국회의원도 나오고 하면, 자신이 매우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런 때 정치권에서 누가 손짓하면 얼른 달려나간다.

    다행히 자기가 도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5년 정도 장관 등등 요직을 거치다가 학교로 돌아오면, 다시 거물급 인사가 되어 대우가 달라지고 다른 교수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교수가 정치권으로 나간 동안은 휴직처리되기 때문에 새로 교수를 뽑을 수가 없으니, 학생들로서는 손실이 크다. 다른 공무원이나 교사와는 달리 교수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그 전문지식과 경륜을 국가 발전에 활용하려는 취지에서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고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교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심한 것 같다. 교수가 마치 정치하는 사람의 시녀(侍女) 같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교수가 너무 많다. 학문의 바다는 끝이 없다. 밤낮으로 공부해도 너무나 부족할 판에, 매일 학교는 안 가고 선거캠프로 출근해서 될 일인가?

    매일 대선후보를 따라다니면 학교 강의와 학생지도는 어떻게 하겠는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도, 교수를 발탁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연구 안 하면서 선거캠프에 출근하는 교수를 장관이나 비서관으로 임명할 것이 아니라, 자기 연구실을 지키면서 정말 그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를 발탁해서 일을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몇몇 자리를 보고 저렇게 많은 교수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니, 유충등을 보고 달려갔다가 물에 빠져 죽는 나방이 생각난다.

    * 飛 : 날 비. * 蛾 : 나방 아.

    * 赴 : 나아갈 부. * 火 : 불 화.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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