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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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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견정사정(見蜓思程)- 잠자리를 보면 정자(程子)를 생각한다

  • 기사입력 : 2012-09-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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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숙종 때의 대학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은, 공자 맹자의 학문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자학(朱子學)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일생 동안 주자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주자학이 조선에 들어와서 우암에 의해서 재정비되어 체재를 갖추었다.

    우암 송시열 하면, 공허한 성리학 이론이나 부르짖고 현실과 맞지 않는 예송(禮訟)이나 일으킨 인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200권이나 되는 주자문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주석을 달았다.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義)’라는 이름의 책이다. 이런 정도의 주석은 중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나온 적이 없다.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注)’는 고려 후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우암이, 주자의 ‘사서혹문(四書或問)’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급히 구해 와서 간행하게 하였다. 이 밖에도 주자가 ‘논어’와 ‘맹자’에 주석을 단 책인 ‘논맹정의(論孟精義)’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북경으로 가는 사신들에게 구해 오도록 계속 부탁했는데, 40년 만에 그 제자 이선(李選)이 구해가지고 왔다. 이때 우암은 82세로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다. 이 책을 입수하고서 우암은 즉시 ‘사서혹문정의통고(四書或問精義通考)’라는 책의 저술을 시작,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 초고를 완성했다.

    우암은 정자와 주자를 너무나 존경하고 흠모하였다. 그래서 ‘잠자리를 보면 정자를 생각하고 거미를 보면 주자를 생각한다[見蜓思程, 見蛛思朱]’라고 했다. 잠자리를 보면, 잠자리 ‘정(蜓)’자와 발음이 같은 ‘정자’를 생각하고, 거미를 보면 거미 ‘주(蛛)’와 발음이 같은 ‘주자’를 생각할 정도였다.

    어떤 분야의 학문에 대성하거나 특출한 전문가가 되는 데는 거기에 집중하거나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한문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조금 알려지게 된 것도 오로지 한문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여덟 살 되던 해 부친이 돌아가셨다. 더 큰 충격은, 그해 11월에 학교 갔다가 집에 와 보니, 집에 난리가 난 것이다. 양복 입은 사람 대여섯 명이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광으로 다니면서 물건에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차압이라는 것이었다. 부친이 우리가 사는 면에 중학교를 세운다고 건물을 지었는데, 중학교 인가를 얻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금융조합에 빚을 많이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조합에서는 상환 독촉장을 계속 보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차압을 하러 나온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학교를 마치고 나서 집에 오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고,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하여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때 나에게 빛을 준 것이 바로 책읽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단군신화(檀君神話)를 접한 뒤로, 특히 역사, 인물 관계의 책을 좋아하였는데, 너무나 흥미가 있어 세상 걱정이 다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 인물 관계를 알려면 한문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한문 옥편을 늘 지니고 다녔다.

    점점 흥미를 가지다 보니, 하늘의 구름을 보아도 한문 글자 같고, 산의 능선을 보아도, 앞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의 무늬를 보아도 한자 같고, 마시는 물 그릇 속의 그림자 속에서도 한자 획을 발견하곤 했다.

    그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 만화가 많이 유행했는데, 국사나 한문에 흥미를 느낀 필자는 만화책을 단 한 권도 보지 않았다. 만화책보다 국사나 한문에 관한 책이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몰입교육이라는 말을 몰랐지만, 몰입교육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생각된다.

    *見 : 볼 견. * 蜓: 잠자리 정.

    *思 : 생각할 사. *程 : 길 정.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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