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5일 (수)
전체메뉴

(445) 내성외곽(內城外郭)- 안쪽의 성은 성(城), 바깥쪽의 성은 곽(郭)이라 한다

  • 기사입력 : 2012-08-21 01:00:00
  •   



  •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 나라를 세우면 성을 쌓는데, 특히 국왕이 사는 서울은 성을 특별히 신경을 써서 쌓는다. 그래서 서울을 경성(京城), 도성(都城)이라고 부른다. 관자(管子) 도지편(度地篇)에 보면, “안쪽에 성을 만들고, 성 바깥에 곽을 만든다[內之爲城, 城外爲之郭]”라는 구절이 있다.

    중국 북경에는 옛날 황제가 살던 궁성(宮城)이 있는데, 이를 금성(禁城) 또는 자금성(紫禁城)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금성이라고 부르는데, 중국 사람들은 자금성이라는 말은 잘 안 쓰고 보통 고궁이라고 부른다. 하늘의 북극성(北極星)을 위주로 한 자미성(紫微星)이라는 별자리가 있는데, 한자리에서 변치 않고 있어 모든 별의 표준이 되기 때문에 황제를 상징하는 별로 삼았다.

    자금성은 사방 모두 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높이 10m, 둘레는 3.4㎞이다. 성 밖은 너비 52m의 호성하(護城河)라는 도랑을 파서 적군이 건너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자금성은 부지가 72만㎡이고, 건축면적은 17만㎡, 980개의 건물에 8707칸의 전당과 누각이 남아 있다. 흔히 자금성의 방 칸수가 9999칸 반이라는 설이 있는데, 화재 등으로 방이 줄었으므로 원래는 그 정도 됐을 것이다. 방 하나에 한 번씩 잔다면, 다 자는 데 30년이 걸린다고 할 정도로 세계 최대의 궁전이다.

    자금성 밖에 또 황성(皇城)이 있었는데 이를 외궁성(外宮城)이라고도 불렀다. 1912년부터 헐기 시작하여 지금은 거의 다 헐어버렸고, 지금 중국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천안문(天安門)은 원래 황성의 정문이었다. 천안문 좌우의 붉은 담장이 옛날 황성의 자취이다.

    황성 밖에 북경성(北京城)이 있었는데, 1421년 명나라가 북경으로 도읍을 옮길 때 쌓은 성으로 1911년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흔히 경성(京城), 대성(大城), 내성(內城)이라고도 일컬었다.

    북경성은 동서가 약간 길고 남북이 약간 짧은 장방형의 구조인데, 거의 정방형에 가깝다. 전체 둘레는 23.3㎞이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 정부에서 북경성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북경을 순환하는 도로를 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완비된 삼중(三重)의 북경성이 자금성 둘레만 남고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11년 청나라가 망한 이후로 북경시내를 삼중으로 막고 있는 북경성은 흉물이었다. 시커먼 성벽에 풀이 나고 이끼가 끼고 허물어지고 하니, 보기가 좋지 않았다. 또 새로 등장한 차량이 통행하는 데 엄청난 방해가 되었다. 또 백성들이 축대를 쌓거나 집을 지을 때 헐어가서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훼손된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나서 북경성을 완전히 허물고 거기에 도로를 내고 그 지하에는 지하철을 놓았다.

    지금 중국의 지식인들은 북경성이 없어진 것을 엄청나게 아까워하여 군데군데 복원을 하고 있지만, 지금의 여건으로서는 어떻게 회복할 수가 없다. 우리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문화는 창조하기 어렵지만 한 번 파괴한 문화를 다시 창조하기는 더 어렵다. 발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금도 문화재를 마구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더욱더 문화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 內 : 안 내. * 城 : 재 성. * 外 : 바깥 외. * 郭 : 성곽 곽.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