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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승승장구(乘勝長驅)- 이긴 기세를 타고 그대로 길게 밀고 나간다

  • 기사입력 : 2012-08-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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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년 7월 29일 제14회 올림픽이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상 처음으로 참가한 올림픽이었다. 64년 만인 2012년 7월 29일에 제30회 올림픽이 다시 런던에서 열렸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계 역사상 올림픽 개막 선언을 두 번 한 최초의 국가원수가 되었다.

    1948년 대회에 참가한 52명의 우리나라 선수들은 남의 나라 비행기와 배, 열차를 갈아탄 뒤 18일 만에 겨우 런던에 도착했다. 이미 시합을 하기 전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때 축구가 본선에 진출했는데, 첫 상대인 멕시코를 5-3으로 이겨 8강에 진출했다. 8월 5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12로 졌다. 0-12는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국제경기에서 제일 큰 점수 차로 진 기록이다. 스웨덴은 48개의 슛을 쏘았으니, 평균 2분마다 슛 하나를 날린 셈이다. 골키퍼 홍덕영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 스웨덴이 우승했다.

    64년 뒤 대한민국 대표팀은 대회가 열리기 열흘 전에 근 300명의 선수들이 전세기를 타고 13시간 만에 현지에 도착해서 현지 적응훈련 등을 했다. 연속 7회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축구는 예선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8강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전의 상대가 하필 축구 최강국 영국이었다. 축구 종주국임을 자처하고, 전국에 축구팀이 5000개가 되는, 축구가 국기와 다름없는 나라이다. 영국은 8강전 상대로 한국팀을 만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기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영국 관중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영국 감독이나 선수들도 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양상은 달랐다. 패기만만한 한국선수들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경기해 먼저 득점했다. 심판이 편파적 태도로 영국에 두 개의 페널티킥을 제공했지만, 영국은 하나를 성공시켰고 연장전도 그대로 끝났다. 승부차기로 결판을 내는 순간이 왔다. 승부차기는 사실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다. 영국이 먼저 차기 때문에 한국팀은 더 불안할 수가 있다. 4-4의 팽팽한 접전 끝에 다섯 번째 킥을 이범영 골키퍼가 막아냈다. 전 국민이 가슴을 졸이는 가운데 기성용 선수가 골을 성공시켜 마침내 영국을 꺾었다.

    64년 전과는 국가적인 지원과 과학적인 훈련이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마음가짐이다. 그때 우리에게는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영국 등 유럽팀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선수도 많고 국제대회에도 자주 나가니 보는 눈이 다르다. 다음 4강전의 상대는 세계 최강의 브라질 팀이다. 맹자(孟子)는 “이기지 못할 것을 보기를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한다[視不勝猶勝]”라고 했다. 미리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 번만 더 이기면 우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면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공기 넣은 가죽 공 하나 가지고 젊은 애들이 노는데, 전 세계가 왜 이렇게 열광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축구의 사회문화적인 기능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축구 하나가 전 국민의 기(氣)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축구가 올림픽 4강전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이 기운을 타고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더욱더 분발해 길이 길이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

    *乘 : 탈 승. *勝 : 이길 승. *長 : 길 장. *驅 : 몰 구.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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