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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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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이진규 김해생명의전화 이사장

“생명을 살리는 전화… 우리라는 생각으로 희망 전하죠”

  • 기사입력 : 2012-06-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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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규 김해생명의전화 이사장이 지난달 25일 김해시 삼계동 대명빌딩 김해생명의전화 사무실 입구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고뇌와 갈등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365일 24시간 전화 내담자의 전화를 기다리는 전화상담봉사단체가 있다. 바로 김해생명의전화이다. 6월 첫째 주에 만난 특별한 사람은 김해생명의전화(☏ 321-9191)를 설립한 이진규(78) 이사장이다.

    “매일 42명 정도가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하는 많은 분들이 오늘도 전화 앞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은 세상의 어떤 가치로도 따질 수 없는 고귀한 일입니다.”


    ◆김해생명의전화 설립

    김해생명의전화 이진규 이사장은 최근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며 자살 예방에 있어서 사회나 국가는 인식 개선 사업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이 김해생명의전화를 설립할 마음을 먹은 것은 경남도교육청에서 생활지도 장학관으로 근무하면서 학생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닫게 되면서부터.

    장학관을 마치고 김해교육장으로 부임하면서 구상을 실행하려던 그는 청소년상담실을 만들어 직접 운영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자 결국 ‘생명의전화(Life Line)’를 찾은 끝에 1993년 7월 10일 사단법인 한국생명의전화 김해지부를 개원했다.

    “당시 김해시 인구가 10만 명 정도였습니다. 저의 뜻에 공감한 지역 유지들이 거금 2억 원을 모아 김해생명의전화를 만들었습니다.”

    김해생명의전화는 한국생명의전화가 1976년 설립된 뒤 전국에서 13번째로 문을 열었다. 당시 김해보다 인구가 많은 창원이나 마산에서도 만들지 못했다.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는 만들 수 없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첫 사업은 심각해지는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 봉사자들에게 전문교육을 이수시켜 1년 365일 1일 4교대 상담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설립 4년째인 1997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김해시 청소년상담실(현 김해시 청소년종합지원센터)을 수탁받아 운영했다.

    이후 2000년 ‘노인의 전화’를 개통해 소외된 노인들의 말벗이 되는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다. 노인의 전화는 2002년부터 ‘홀몸 어르신 생일상 차려드리기’ 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91차례 행사를 가졌다.

    이 이사장은 “처음에는 매월 생일잔치를 열다 2년 전부터는 분기별로 열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날씨 사정 등으로 행사를 치르지 못한 적이 없다”며 “어르신 생일상은 100회까지는 직접 챙겨드리고 싶다. 그때까지 할 수 있으려나” 하고 한바탕 껄껄 웃었다.

    이어 부설 자살예방센터(2002년), 부설 노인복지센터(2005년), 자살유가족지원센터(2010년) 개소에 이어 올해부터는 청소년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좋은부모되기 운동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김해생명의전화는 지난 19년간 상담봉사자 20기 800여 명을 배출했다. 상담봉사자가 되려면 50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현재 21기를 교육 중이다.

    왕릉공원 앞에 190㎡ 규모의 사무실을 빌려 탄생한 김해생명의전화는 지난 2009년 현 위치인 삼계동 대명빌딩에 330㎡의 사무실을 장만했다. 더부살이를 청산하고 새 사무실로 이사를 올 때는 직원 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교육계 ‘골동품’

    지역에서는 드물게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투신한 이 이사장은 ‘교육계 골동품’으로 불렸다.

    내심 서울지역 학교를 기대했던 그는 ‘1년만 고생하면 서울로 보내주겠다’는 당시 문교부 직원의 말만 믿고 1959년 4월 산청 신등중학교 국어교사로 경남땅에 첫발을 디뎠다.

    1년 만에 진해 웅천중학교와 진주여고 등을 거쳐 39세에 가락중학교 교감으로 승진한 뒤 10년 만인 49세에 교장이 됐다.

    그가 김해와 밀양교육장을 역임하면서 지역특성에 맞는 교육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오지 교사에서 시작해서 도시 고등학교에 근무한 경험 덕분이다. 특히 김해시 외동 신도시 인구 급등에 따라 신설 학교를 세워 교육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지금도 보람으로 남는다.

    지난달 스승의 날엔 한 제자가 사무실로 전화를 해 “스승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존경스럽다. 작은 힘이지만 힘을 보태고 싶다”는 인사말을 전해 받았다면서 “생명의전화 활동 19년간 들어본 칭찬 중에 가장 큰 칭찬이었다”고 흐뭇해했다.



    ◆좋은부모되기 운동본부 발기

    40년 6개월을 교육계에 봉직한 이 이사장의 사회봉사는 ‘좋은부모되기 운동본부’로 이어졌다. 가정과 학교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비행을 해결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좋은부모되기 운동본부는 지역의 교수, 교장, 교육장, 목사, 장로 등 20여 명과 함께 발기했다.

    최근에는 좋은부모되기 운동본부를 운영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결혼해 준비 없이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어떤 부모가 돼야 할지 고민하고 배우는 부모학교교육을 일정기간 이수하는 실질적인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

    그는 “시대 변화에 따라 부모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며 “자녀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칭찬을 하거나 안아준다면 자녀들이 삐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사회 단체·지도자 관심·후원 기다려

    이 이사장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봉사단체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후원의 손길을 늘 기다리고 있다.

    “나보다 못한 이웃을 챙기고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은 모두가 힘든 요즘 세상에서 더욱 절실합니다.”

    그는 봉사활동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가운데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고 더 나은 발전이 이뤄진다며 지역사회의 단체와 지도자들의 보다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지 않습니까? 개인을 앞세우기보다는 우리라는 생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웃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늘 기분이 좋다는 그가 있어 세상은 더욱 밝아 보였다.



    ☞ 이진규 이사장은…

    1934년 충남 연기군에서 8남매의 장남, 장손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으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어 공주사범대학 및 동대학원 교육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산청 신등중학교를 시작으로 교직에 입문한 뒤 가락중학교 교감, 김해시교육청 장학사, 김해건설고 교장, 경남도교육청 연구관, 장학관을 거쳐 김해교육청, 밀양교육청 교육장을 역임했다.

    교육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 (1999년), 경남교육상(2010년) 등을 수상했다. 1998년에는 ‘수필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1999년 정년퇴직하면서 수필과 논고 등을 모아 ‘세월 속에 접어둔 사연들’을 발간했다.

    부인 유영희(76) 여사는 중등 교원으로 명예퇴임했으며 슬하의 두 딸은 모두 출가했다.


    글=김진호 기자 kimjh@knnews.co.kr

    사진=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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