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이우걸
- 기사입력 : 2012-04-2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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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면 지리라
지면 잊으리라
눈 감고 길어 올리는 그대 만장 그리움의 강
져서도 잊혀지지 않는
내 영혼의
자줏빛 상처.
- 시집 ‘네 사람의 노래’ 에서
☞ 영혼의 깊은 우물에서 한 두레박씩 퍼 올린 갈증이 여백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 여백에서 시의 화자는 되뇝니다.
한낱 기억에서 망각으로만 점철되는 인생은 무효라고요. 우주의 생성원리는 생과 사의 무한반복입니다.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사라짐은 곧 인간의 뇌리에서 잊혀진다는 것, 생의 귀결점은 사라짐 곧 망각입니다. 말짱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르르 지는 봄꽃을 잊어야 하고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잊어야 하는 것. 어쩌면 인간은 잊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눈 감고도 길어 올리는’ 퍼 담을 수 없는 ‘그리움의 강’은 물결 따라 출렁입니다.
여기 생의 한 모퉁이에서 ‘져서도 잊혀지지 않는’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그대 영혼을 울리는 모란꽃 같은 사람. ‘자줏빛 상처’만 남기고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 - 김진희(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