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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최삼철 창원농아인교회 목사

“말을 못한다고요? 수화로 설교하며 장애인과 소통하죠”

  • 기사입력 : 2012-04-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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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각장애인인 최삼철 목사가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창원농아인교회 예배실 창가에서 부인 박경희씨와 수화를 하고 있다.
    최삼철 목사가 수화로 설교를 하고 있다.


    “추운 겨울, 버스정류장에 선 두 사람은 두꺼운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땅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간이 서로 얼굴을 마주치고 웃는 걸 보니 대화를 하고 있나 봅니다. 신기합니다. 저렇게 마주보지 않아도, 손을 꺼내놓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양 손에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오물오물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아내와 아들을 보면 그것도 참 부럽습니다. 저는 밥 먹다가 이야기를 하려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창원농아인교회 최삼철(41·청각장애2급·총회농아인선교회 부회장) 목사.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앞두고 최 목사와 그의 통역사이자 동반자인 부인 박경희(39)씨를 만났다.


    ◆청각장애인의 현실

    지난해 영화 ‘도가니’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우리 사회도 청각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들은 여전히 무관심과 편견에 상처받고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헬렌 켈러는 자서전을 통해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 중에서 단 하나만 선택한다면 망설임없이 ‘듣고 싶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보지 못한다면 사물과 멀어지지만, 듣지 못한다면 사람과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은 건청인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의 신체적 장애는 곧 사회적 장애가 된다.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에게 타인이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단절’ 또는 ‘좌절’이 되기 십상이다. 청각장애인들은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하면서 사회와 직장, 심지어는 가정에서조차 ‘왕따’를 당하고 있다. 직장을 구하기 힘들고, 취업한다 해도 낮은 급료를 면치 못하며, 더러는 고집 센 미숙아로 취급되기도 한다.

    경남지역 청각장애인은 1만7000여 명, 창원지역에만 4500명이 있다.


    ◆청각장애를 딛고 목사가 되기까지

    최 목사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빈농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열병에 시달리다 뒤늦게 병원에 갔으나, 의사의 오진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어버렸다.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마쳤으나, 교사나 친구들의 말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그는 한글조차 깨치지 못했다. 말도 못하고 글도, 셈도 못하는 저능아 취급을 받았다. 이유도 모른 채 친구들에게 폭행당했고, 쫓기며 돌팔매질을 당했다. 아프다고 표현할 수도, 때리지 말라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울기만 했다. 심지어 돌멩이를 던지는 아이들의 무리 속에 친형의 얼굴도 보였다. 그 어린 나이에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특수학교인 경북 안동진명학교와 인연이 됐다. 아버지는 “벙어리 자식 세상에 나가 천대받지 말고 농사나 짓자”고 만류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있어 진학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해서야 한글을 깨치고, 수화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또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어머니 앞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눈물 흘리며 “우리 아들 장하다”라고 칭찬해주신 어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최 목사는 중2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고1때 목사가 되길 결심했다. 그러나 유일한 후원자였던 어머니는 중2 때 운명했고, 아버지는 “말 못하면서 어떻게 사람들한테 설교하는 목사가 될 수 있느냐”며 여전히 만류했다.

    그렇지만 안동교회 한 권사의 후원으로 대구 영남신학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서울장신대 대학원을 거쳐 2002년 4월 안동 경안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청각장애인의 아버지가 되다

    최 목사는 110여 명 창원농아인교회 신도들의 아버지이자, 형이요, 아들이다.

    2006년 4월 당시 마산시 양덕동 마산농아인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최 목사는 2008년 10월 지금의 도계동으로 옮기면서 교회를 두 배 이상 키웠다. 그러나 여느 교회와 달리 신도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생계를 지원해야 하는 대상이 늘어나는 것이어서 교회는 더욱 가난해졌다. 하지만 최 목사는 오히려 할 일이 늘어나서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장애인이라도 수화를 모르는 교사가 많다 보니 선생님의 지식을 그대로 전수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전문직업인이 없다. 혹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더라도 경남에는 농인복지관, 농인요양원 등 농인복지시설이 한 곳도 없어 취직할 데가 없다.

    또한 건청인들과 대화를 못하다 보니 면 서기 한 명 없고, 작업반장조차 못한다. 못 듣다 보니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며 단순노무직조차 고용 않는다. 농인(聾人)들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최 목사는 한숨을 쉬었다.

    이어 “‘장애인은 하나님이 실수로 만든 실패작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에 만들어진 걸작품’이라는 자존감을 심어주고 있다”면서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우며, 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겠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부인 박경희씨는 최 목사는 물론, 청각장애인들의 세상과의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신도가 아파트를 구매할 경우, 공인중개사 사무실 동행서부터 은행 대출, 벽지·타일 고르기, 이삿짐센터 예약, 법원 등기업무 등 박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짜장면이나 통닭을 배달시키려 해도 박씨에게 문자메시지로 도움을 청해야만 가능하다.

    “지난해 청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를 보러 갔는데, 제가 간 이유는 통역을 위해서였다. 건청인들이 수화를 하는 장면은 자막이 있는데, 건청인들의 대화는 자막이 없다. 청각장애인 야구단을 소재로 한 ‘글러브’도 마찬가지였고. 영화사에 문의했더니 자막 버전으로 제작한 것도 있다고 하더라. 아마 극장주들이 건청인들이 자막 버전의 영화를 보려면 성가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또 지난 3월 20일 창원농아인교회에서 수화교실을 개강했다. 하지만 4명만 등록했다. 요즘 학교나 교회 등에서 수화 배우기를 하지만, 그들은 농인들과 대화하기 위해 수화를 배우는 게 아니라, 무용이나 합창을 배우듯 단순히 공연용으로 배운다. 이게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다”며 박씨는 지적했다.



    ◆청각장애인복지센터를 꿈꾸며

    청각장애인들은 화장실에 들어가면 굉장히 불안해 한다.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 앞에 이용자 유무를 알려주는 간단한 장치 하나만 설치해도 아무 문제될 게 없는데. 예산 부족 문제가 아니라, 배려심과 관심 부족이다. 행정기관의 편중된 장애인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최 목사는 가칭 ‘창원청각장애인복지센터’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청각장애인들은 젊을 때 꿈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비참하게 사회 약자로 일생을 살아가는데, 노후는 더욱더 참담하다. 특히 유일한 대화 상대인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난 후 홀로 남겨진 노인들은 철저히 고독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외로움에 치를 떨다가 처참하게 일생을 마감한다”

    “젊을 땐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가정을 꾸린 후에는 그 자녀들 양육을 돕고, 노년에는 편히 쉬며 마음껏 대화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 목사가 꿈을 이루기엔 너무 힘겨워 보인다. 가난한 교회를 꾸려가기에도 벅차 보이는데, 수십억원을 투입해야 하는 복지센터 건립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더욱이 최 목사의 인적 네트워크로 볼 때 지자체나 기업체, 독지가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들다.

    “청각장애인복지센터를 두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신념을 갖고 계속 도전하는 한 불가능은 없습니다. 기적은 믿는 자에게 반드시 이뤄집니다.”


    글= 정오복기자 obokj@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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