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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삼국사기에서 살펴본 한약’ 저자 박상표 국립마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단군신화의 곰이 먹은 마늘은 당시엔 없었어요”

  • 기사입력 : 2012-03-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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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마산병원 박상표 진단검사의학과장이 자신이 편찬한 한약역사총서 제1권 ‘삼국사기에서 살펴본 한약’이라는 책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한의사인 박상표 과장은 한약역사총서를 총 30권으로 편찬할 계획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한의학을 배우는 선후배들과 앉은 자리에서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 중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웅녀)이 먹는 재료인 마늘과 쑥 중 쑥은 당시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마늘은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일연이 책에서는 마늘을 뜻하는 산(蒜)을 썼지만 식물고고학으로 보면 마늘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봄나물 달래다.

    실존하지 않던 마늘을 먹었다고 하니 신화의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행위다”고 목청을 높이던 사람이 있었다.

    박상표(52) 국립마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이 주인공이다. “적어도 학문을 하는 사람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 행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하던 그 사람이 이젠 그 말빚에 갇혀 살고 있다.

    957쪽에 이르는 ‘삼국사기에서 살펴본 한약(三國史記 韓藥)’을 펴낸 박 과장에게 “왜 그렇게 매달렸느냐”고 묻자 “마늘이, 말빚이 모티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늘은 BC 108년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4군이 설치되면서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덧붙였다. 불휘미디어가 최근 펴낸 이 책은 ‘한약역사총서 1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까지 붙어 있다.



    볕이 따뜻했던 지난 15일 오후, 박 과장이 일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국립마산병원을 찾았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한의사는 온데간데 없다. 평상복 차림의 안경을 쓴 50대가 반긴다. 말빚에 갇혀 옴짝달짝 못할 것이라는 추측을 싹 사라지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어쩌면 그 말이 바꿔놓은 오늘의 삶을 즐기는 듯했다.

    두터운 자신의 저서를 펼친 뒤 차례를 보면서 한약에 대한 설명으로 기자의 무지를 일깨워줬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약물이 1000여 개에 이른다”면서 “우리가 먹는 인삼 등 모든 약제가 삼국사기에 모두 등장한다. 실제로 지금 치료제로 사용하는 모든 약초가 삼국사기가 쓰여진 당시의 시대에도 대부분 한국의 산야에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나 언론에서 한약의 중요성을 종종 이야기하는데 참 웃기는 이야기”라고 비꼰 뒤 “한약에 대한 교육기관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의학교’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요즘 국립한의과대학과 같은 조직으로 보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학서나 본초서는 있지만 한의학적 역사서에 대한 책은 한 권도 없다”는 말로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박 과장은 1993년 촉발된 한약분쟁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한의사로서 마산에서 한의원을 개원하고 진료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1997년 당시 복지부에 한방정책관실이 신설되고 한의-한약담당관실이 설치돼 한방업무를 전담할 한의사를 보건사무관으로 특채한다는 사실을 듣고 한의학 발전과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큰 뜻’을 품고 공직에 발을 내디뎠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행위라는 말이 빚이 돼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한약이라는 1000여 쪽에 이르는 책을 펴냈지만 박 과장의 처녀작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5월부터 대한민국 관문 중 하나인 국립통영검역소에서 소장으로 있으면서 국내 검역역사를 집대성한 4952쪽 14권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집인 ‘한국검역 자료집’을 2004년 6월 발간했다. 이 책은 1885년 고종황제의 수결과 옥쇄가 있는 검역규칙 반포 공문을 비롯해 검역기관의 설치 운영, 관련 법령과 제도 등 근대 보건의료의 효시 등 초기 검역자료와 전 세계 검역 관련 자료를 망라하고 있다.

    검역소장으로 있던 박 과장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만2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을 일일이 뒤지는 등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어쩌면 당시의 그 열의가 오늘을 있게 했으며 ‘미래’까지 담보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음 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거침없이 삼국유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컴퓨터로 끌고 간다. 방대한 자료가 이름표를 단 채 화면에 뜬다. 세상을 향해 내달릴, 독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새로운 지식이 그의 컴퓨터에 담겨 있었다.

    “너무 지루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가, 그리고 힘든 작업이 아니냐”고 물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부터 대한제국 시대까지 각종 역사서에 등장하는 역사서를 주인공으로 그 책속에 등장하는 한약을 주제로 앞으로 최소 30권 정도 책으로 출간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책으로 펴내는 2단계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과장은 그러면서 “나이듦이 가장 큰 한계”라고 스스로 말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듣고 싶은 대답 대신에 그는 “공무원은 과거, 현재, 미래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해설을 붙였다.

    “과거는 나처럼 역사서를 분석하는 등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의 과거 기록을 분석해 교과서로 삼는 것이고, 현재는 직분에 충실한 것이며, 미래는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먼 훗날에도 소중하고 가치로운 것인가를 묻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낯이 달아 올랐다.

    박 과장은 이어 “이 책은 천착(穿鑿)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면서 “반드시 대한제국의 문헌까지 한약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정리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그냥 구멍을 뚫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약의 뿌리를 한가닥 한가닥씩 파고들어 캐냄으로써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어디까지 엉켜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고 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한약은 민족의약의 원자재로서, 또한 문화유산의 원형 중에 하나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약(韓藥)의 뿌리는 몇 ㎞일까”라고 물었다.

    발문의 이 같은 글은 저자가 스스로 묻는 물음이자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의문과도 같았다.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면 저자가 학문적으로 나아갈 길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안경 너머로 마산 앞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진심은 어쩌면 책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 홍익인간의 인류애를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 박상표 과장은= 마산고,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경원대 한의과대학원에서 본초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10년간 마산에서 수강한의원 원장으로 일했고, 1997년 보건사무관으로 보건복지부에 특채돼 국립통영검역소장, 한방정책관 한방의료담당관, 생명과학단지 조성사업단 국책기관이전팀장 등을 거쳐 2010년 7월부터 국립마산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글=이병문기자 bmw@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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