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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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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박정미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장애인들이 차별의 굴레서 벗어나 행복하게 하소서”

  • 기사입력 : 2012-03-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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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 박정미 관장이 복지관 2층 보호작업장에서 장애인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장애인을 만나는 박 관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박정미 관장이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또 하루를 선물받았습니다.

    우리 복지관을 이용하는

    모든 장애인들과 모든 직원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오니

    이들에게 꼭 필요한 축복을 내려 주옵소서. 세상의 냉소가 사라져

    장애인들의 입가에 미소가 한껏

    머금어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장애인들이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신체적·정신적 차이도

    평등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보살펴 주옵소서….”

    -박정미(호스티아) 수녀의 새벽기도에서-



    장애인들의 잠재력과 기능을 개발해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이 올해로 개관 20년을 맞았다. 복지관은 지난 20년 동안 장애인들이 상담·치료·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재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왔다.

    이곳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서 하루종일 하빗(수도복)을 입고 장애인들을 안내하며 돕고 있는 수녀 박정미(호스티아) 관장을 최근 만났다. 수도자의 입장에서 대중언론에 자세히 모습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은데, 며칠에 걸친 섭외를 통해 관장수녀를 지면에 소개할 수 있는 어려운 기회를 마련했다.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 창설멤버로 창원에 오다

    박정미 관장은 지난 1987년 대학을 졸업한 후 대구장애인복지관에서 4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 1991년 툿찡 포교 베네닉도 수녀회 대구수녀원에 입회해 현재까지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박 관장은 1992년 경남도에서 천주교 마산교구 사회복지법인 범숙(이사장 박정일 주교)에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 운영을 위탁할 때 처음 이곳으로 와 복지관 개관을 준비하며 도내 장애인들과 처음 만났다.

    장애인 복지현장이 많이 열악할 당시인 그때 박 관장은 복지관이 개관을 하기도 전에 많은 이용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때는 건물만 지어 놓은 상태에서 경상남도로부터 위탁 받아 교재교구, 환경 등 복지관 내부가 준비되지 않았다. 내부 모습도 그렇지만 프로그램도 준비가 안돼 특수교사 등 전문 인력을 모집하고, 장애아동 치료, 성인을 위한 직업재활을 준비했다. 또 사회복지사들은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장애인 맞선, 결혼상담, 무료진료 등 프로그램과 치료교육, 한의사회·의사회·약사회와 협의해서 하는 무료진료 사업도 펼쳤다. 당시 복지관이 없었던 함양, 산청, 거제, 통영 등 창원을 제외한 나머지 20개 시군을 돌면서 무료진료 사업도 펼쳤다.

    복지관이 창원시 봉곡동 현 위치에 들어설 때 민원도 많았다.

    복지관 설립에 대한 1차 민원은 경남도가 많이 진정시켰지만 주민들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시설이 있는 것에 대해 싫어했다.

    하지만 박 관장은 주민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지역주민들을 초대해 함께하는 자리를 많이 마련했고, 반상회 등을 통해 홍보하고, 무료진료 등 지역주민들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해 지역주민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박 관장은 개관 준비와 개관 초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후 복지관을 떠났고, 이후 1996년 또다시 복지관을 찾아 조금 더 발전된 복지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관장은 또 2002년 세 번째로 복지관에 발령받았고, 2008년 복지관 관장으로 부임해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만 12년의 시간을 장애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도울 수 있었던 일과 돕지 못했던 아픈 기억들

    박 관장은 기쁜 일과 슬픈 일 등 삶의 애환을 장애인들과 늘 함께해 왔다. 그래서 장애인들과의 특별한 기억들이 많다.

    박 관장은 뇌성마비 장애인이 결혼 상담을 하러 왔던 일을 기억했다. 그녀는 마음이나 인격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성숙한 사람이었지만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몸의 근육이 자유롭게 조절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이러한 부자유스러운 면 때문에 진정한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가 ‘외모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많아 내면의 사람 됨됨이와 마음을 보는 사람이 적은 것에 박 관장은 가슴이 아팠다.

    박 관장은 “물론 이 장애인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고 모든 장애인들이 결혼하는 것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앞으로 장애인들도 그들이 원하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고 소망했다.

    장애인을 돕고 싶었지만 돕지 못했던 또 다른 기억들도 끄집어 냈다.

    15년 전 만난 8세 된 여자아이는 발달장애 1급으로 자폐성향이 굉장히 심한 아이였다. 또 이 아이의 부모들도 지적장애인이었고 여동생과 남동생은 비장애인이었다. 부모들은 경계선급의 지적 장애였는데 일상생활은 되지만 아이를 치료할 정도는 아니었고,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이해하지 못하고 때리며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웃들도 도움을 줄 수가 없고 복지관에서 친척과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구해봤지만 친척들도 냉대하고 이웃들도 관심이 없어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박 관장은 “지금은 활동보조인이 있어 치료교육도 지원할 수 있고 가정생활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참 막막했고, 알면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아마 제가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 인식·제도개선은 비장애인들의 보험인데…

    박 관장은 복지관 운영을 위해 성서 데살로니카 1서에 나오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라는 구절을 늘 복무자세로 견지하고 있다. 이 구절을 통해 복지관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과 사건 안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박 관장에게 주어지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한다.

    그런 박 관장은 장애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동정이나 차별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다른 이들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신들의 존엄성, 인간성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장애인들은 충분히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살아갈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또 박 관장은 장애인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차별하면 그 불이익은 결국 우리 사회에 돌아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각종 환경재앙, 사건사고에 많이 노출된 우리는 결국 ‘예비 장애인’이며 병이나 사고를 통해 작게 또는 크게 우리 사회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모든 환경이 구성돼 있어 장애인들이 설 자리는 좁고, 예비 장애인들도 이 같은 차별을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인 것이다.

    박 관장은 “빈익빈 부익부 구조 속에서 장애인들도 떳떳한 주체세력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회구조로 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층이 먼저 변해야 하며, 결국 기득권층도 예비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 인식과 제도개선은 미래의 자신들을 향한 보험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소극적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20돌 맞은 복지관 ‘사랑의 홈’ 만들고 싶어

    박 관장은 복지관 운영 각오에 대해 지난 2005년에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기초해 장애인의 존엄한 인간적 가치 회복에 함께한다’는 사명을 정하고 ‘장애인 가족의 완전한 지역사회 생활회복 2015’라는 비전을 갖고 중장기계획을 세워 오는 2015년까지 실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올해에는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라는 운영 모토와 함께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례관리를 강화하고 지역사회 통합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며, 20년을 맞이한 복지관이 장애인을 위해 더욱 따뜻한 ‘사랑의 홈(Home)’으로 변화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박 관장은 “앞으로 도립 장애인복지관의 책무성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며, 특히 장애인복지 부분의 취약계층인 중증장애인, 여성장애인과 발달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향상을 위해 프로그램을 더 개발하고 지역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수혜대상을 확대해 나가는 데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관장은 호주의 ‘닉 부이치치’라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취재 말미에 끄집어 냈다.

    그 장애인은 팔과 다리가 없고 몸통만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저는 그 사람을 좋아하며 그 사람을 통해 장애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 속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무리 장애가 심해도 나 자신이 장애를 극복하면 그것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관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오면 그 어려움만 보지 말고 그것을 해결했을 때, 또는 이겨냈을 때의 행복과 성취감을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어려움과 장애, 시련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선물입니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하느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글=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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