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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독도 지킴이’ 강영철 사천고 교장

독도 지키기 16년 열혈 ‘독도 선생님’

  • 기사입력 : 2012-03-0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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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영철 사천고 교장이 독도 그림그리기 대회에 출품한 학생들의 작품을 살펴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영철 교장이 18세기 일본이 제작한 지도에 한국령으로 표기돼 있는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 2월 8일 창원MBC홀에서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경남도교육청이 학교 독도교육 역량 강화를 위해 ‘2012년 학교관리자 독도교육 워크숍’을 개최한 것.

    고영진 교육감은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 중 최초로 독도에서 ‘독도교육 선포식’을 한 데 이어 이날 독도교육 활성화를 위해 신용하(서울대 명예교수) 독도학회장을 경남 독도교육 고문으로, ‘독도는 우리 땅’ 가수 정광태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특히 이 자리서 ‘독도 지킴이’로 널리 알려진 강영철(56) 사천고 교장이 ‘학교 현장 독도교육 우수사례’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사천고 교장실에서 강 교장을 만났다.



    독도와의 필연적인 만남

    강 교장이 독도에 빠진 것은 16년 전. 창원 경일고 철학담당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1996년 4월 경남신문이 창간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독도와 거북선전’을 관람했고, 그곳에서 ‘발해 뗏목탐사대’ 고 장철수 대장을 만나게 됐다.

    “당시 독도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던 시기인데 장철수 대장과 얘기를 나누면서 학생들에게 막연하게 애국심이나 나라사랑 교육을 하기보다는 실체가 있는 독도 문제를 통해서 나라사랑 마음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도 바로알기에 뜻이 있는 학생들을 모집한 그는 그해 6월 전국 고교 최초로 장철수 대장과 함께 ‘경일독도 연구부’(지금의 독도 지킴이부)를 창립했다. 이후 매년 현충일에는 독도지킴이 학생들과 부산 수영구 수영공원 내 ‘독도장군’ 안용복 장군의 충혼탑을 찾아 헌화하고, 주변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봄·가을에는 독도 관련 세미나와 독도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해양수산부 주최·부산 해양대학교 주관 바다선상세미나에 참가, 독도를 선회하고 오기도 하고, 독도탐방도 5차례나 했다.

    “초기엔 아이들이 때가 되면 선생님에게 밥 사달라고 조르고 자기들끼리 먹기에 바쁘더니 1년 활동하고 나니까 선생님에게 먼저 먹을 것을 권하더라. 학생들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독도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구나 싶어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16년간 한결같이 독도지킴이 운영

    강 교장은 1996년 창원경일고에서 시작해 창원경일여고를 거쳐 지난해 사천고 교장으로 첫 취임해서도 ‘독도지킴이부’를 만드는 등 16년 동안 독도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천고 전 교직원도 강 교장과 뜻을 같이해 지난 여름방학 때 사천고 독도탐방을 다녀왔다. 수능이 끝난 후에는 청소년들에게 호연지기를 심어주기 위해 학년별 명산순례도 실시했다.

    특히 지난해 5월 27일에는 전 교직원 및 전교생이 참여한 가운데 사천해전 승전기념 순례 행사로, 학교에서 선진리성까지 왕복 20㎞를 걸었다.

    “거북선이 첫 출전해 승리를 거둔 해전이 바로 사천해전(1952년 5월 29일~6월 1일)입니다. 이에 충무공의 얼을 되살리고,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주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는데, 통영 세병관에 보관돼 있는 임란 당시 조선수군통제부 깃발을 모델로 반별, 학년별, 학교 깃발을 제작해 들고서 행군했습니다. 학교 운영위원들도 물병을 선물하고 함께 행군해줘 참 좋았습니다.”






    독도 보존을 위한 7가지 방안

    강 교장은 지금까지 독도를 7차례나 다녀왔다. 학생들은 처음 방문이기에 매번 동행했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독도에 죽고 사는 그이지만 잠시 손을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든 때도 있었다. 잦은 주말 활동으로 지친데다 동아리 운영과 관련해 사비 지출도 만만찮았고, 아내가 ‘그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지 않느냐’며 반기를 들었을 때다. 아내는 2005년 현충일에 안용복 장군 충혼탑에서 헌다 행사를 주관한 후 열혈 후원자로 돌아섰다.

    그가 ‘독도’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연례행사처럼 터지는 일본 관료나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을 접할 적이면 ‘나 홀로라도 끝까지 일본 주장의 부당성을 알리는 독도 교육을 지속해야 하겠다’는 투지가 샘솟기 때문이다.

    “일본이 거의 매년 독도 망언을 하는 것은 그런 내용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국제사법 재판이 붙으면 근거자료로 제출하고, 국제적으로 유리한 내용을 전파하기 위해섭니다. 일본은 초등학교에서 하던 독도교육을 고등학교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니다. 이러한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저는 2000년, 2005년 두 차례 교과부에 초등 교과서 ‘울릉도와 독도 주변 환경’ 단원 설정을 건의한 바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국민들이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때 지킬 수 있습니다.”

    강 교장은 ‘독도 보존을 위한 7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바로 △국가적 차원의 독도 바로알기 자료 세계 홍보 △세계지리학회·세계지도제작사·세계백과사전출판사 초청 세미나 개최 △해외 한국대사관에 자료 비치 및 해외공관원들 독도 교육 실시 △독도 국제전문가 양성 △초·중등 교과서에 ‘울릉도와 독도의 주변 환경’ 단원 설정 및 단계적 교육 △동해 지명 찾기 △독도를 유인도화해 실질적인 영토 관리 등이다.



    본적도 독도로 옮긴 열정, 누가 말려

    강 교장의 현재 본적은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번지다. 지난 2002년 6월 경남 사천시 곤명면 송림리에서 독도 1번지로 바꿨다. 일본인들이 본적을 독도로 옮기는 데 맞서 우리나라에도 독도로 주소지 옮기기 바람이 불던 때다. 그의 독도 사랑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독도로 본적지를 옮긴 사람은 전국에서 270여 가구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본적과 관련,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했다. 의무경찰로 훈련소에 입소한 아들 녀석이 본적을 옮긴 사실을 깜박하고 사천시 곤명면 송림리로 본적을 적어냈던 것.

    “수업 중에 전화가 왔다길래 못 받고 수업 후 전화를 했더니 훈련소 중대장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본적도 안 알려주었느냐며 꾸짖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말투가 싹 달라지더군요. 아들에게 본적 바꾼 얘기를 해줬는데 잊었나 봐요. 나중에 아들이 전하기를, 중대장이 불러서 갔더니 커피를 타 주면서 “참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더구나”라고 하더랍니다.”



    ‘독도 선생님’으로 통해요

    철학도 출신답게 명상을 즐긴다는 강 교장은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 사이에 ‘독도 선생님’으로 통한다. 그 역시 그렇게 불리는 것이 더 편하고 좋단다.

    독도교육 전도사로 유명세를 타면서 독도지킴이부와 함께 방송이나 신문에 수십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독도 관련 특강도 자주 하고 있고, 2년 전부터는 창원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교육 강의도 하고 있다.

    강 교장은 독도교육 관련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4월 (사)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주최 제52회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에서 특별활동분과 1등급(개인)을 획득,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상장 및 한국교총 ‘푸른기장증’을 수상했다. 이 상은 교직계에선 가장 큰 상으로 꼽힌다고 한다. 2008년 12월에는 경남도육청 ‘올해의 스승상’, 2010년에는 한국일보 주최 제29회 한국교육자대상(스승의 상 부문) 등을 수상했다. 교육학 박사인 그는 전문상담교사, 가족상담사, 청소년지도사, 수련감독 전문상담사 외에도 많은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정년 이후에도 독도지킴이로서의 활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아울러 사회복지부문 활동을 하고 싶어서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그는 또 수도권대학 진학률 상승으로 사천고 지원자가 많아지고 있어 학급 증설이 조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에게 독도와 관련, 마지막 한마디를 청했다.

    “1905년 이전의 역사적 자료를 보면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독도를 조선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9세기 일본이 제작한 지도에도 독도는 조선 땅으로 표기돼 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왜 연례행사처럼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잊어선 안 됩니다.”

    강 교장의 표정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선조들이 잘 보존해온 독도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사명감과 독도 교육의 중요성이 읽혀졌다.
     

    글= 홍정명기자 jmhong@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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