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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합포만의 아침’ 작가 송창우 시인

“몇 개월만…몇 개월만 하다 벌써 9년이 흘렀네요”

  • 기사입력 : 2012-02-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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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창우 시인은 매일 아침 9년 동안 ‘합포만의 아침’이라는 이름으로 메일링을 해왔다. 송창우 시인이 창원시 창동의 북카페인 ‘시와 자작나무’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송창우 시인이 ‘시와 자작나무’에서 아침편지를 쓰고 있다.


    매일 아침 편지를 보내는 남자가 있다. 9년간 2000여 통이나 되는 편지를 썼다. 받는 사람은 수천 명의 ‘그대’들이다. 편지를 받은 ‘그대’들은 얼굴도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남자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글을 읽으면 울고 웃고 생각한다. 그의 글귀 하나에 메말랐던 아침이 촉촉해지기도 하고, 움츠렸던 어깨를 다시 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마산의 한 지역 백화점에서 메일링하는 ‘합포만의 아침’의 작가 송창우(44) 시인. 마산 사람들에겐 ‘아침지기’로 더 친숙한 그를 만났다.


    시인 송창우, 마산의 아침지기가 되다

    송창우 시인은 문단에서 제법 저명한 작가다. 대학시절인 199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참신하고 개성있는 작품으로 실력있는 신인으로 주목받았다. 많은 수의 작품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자타공인 그의 본업은 ‘시인’이었다. 그런 그가 익명으로 모 백화점의 메일링 서비스인 ‘합포만의 아침’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시인이 산문을, 그것도 익명으로 시작하게 된 경위는 무엇일까. 그는 ‘아침지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유행했어요. 백화점에서 지역 밀착 사업을 구상하던 중 편지를 고객들에게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던 모양이에요. 마침 친한 친구가 백화점 마케팅 팀에 있어서 부탁을 하더라고요. 처음엔 거절했죠. 글쓰기란 영혼을 파는 일인데 백화점에서 제공하는 글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부탁은 끈질겼고, 결국 마땅한 사람을 구할 때까지 1~2개월만 맡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몇 개월만’, ‘몇 개월만’이 더해져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송 시인은 “처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나 부담스러웠는데 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어렵지 않더라”며 “자의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글을 쓰면서 매일 하루를 돌아보고 사색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됐고, 쓸거리가 없을 때는 내가 하루를 의미없게 보내지 않았나 반성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합포만의 아침’을 백화점의 스팸메일 정도로 치부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점점 아침지기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2003년 3월 27일, 100여 명으로 시작됐던 그의 독자는 4~5개월 만에 4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댓글이 100개씩 달리는 날도 있었다.

    한 인간의 소소한 일상, 한 시인의 풍부한 감성, 한 지역민의 지역에 대한 사랑이야기가 좋은 글귀, 사진, 음악까지 더불어져 매일 아침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으리라.

    유명해진 만큼 그에 따른 에피소드도 많다. “어느날 설계 사무소에 가서 산골로 이사를 한다고 하니까 직원분이 자기도 아는 사람이 산골로 간다는 거예요. 근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이 ‘합포만의 아침’ 독자였고, 아는 사람이 ‘아침지기’인 저였던 거죠.(웃음) 선물같은 일도 많이 일어났어요. 오랫동안 헤어졌던 누나도, 젊은시절 은인이었던 선배부부도 만났거든요.”

    물론 요즘에는 한창 인기 있을 때보다 독자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는 많다. 그는 편지를 기다리는 독자를 위해 요즘엔 카메라를 매일 들고 다닌다고 했다.



    합포만, 그리고 시와 자작나무

    ‘합포만의 아침’은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합포만’을 사랑한다는 그는 편지 내용 중 절반을 ‘마산’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산의 매미사태에 아파하고, 어시장의 생동감을 그리워하고, 아귀찜을 즐겨 먹는 이의 이야기, 그리고 지역의 문화, 역사, 자연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합포만’의 아침이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가 얼마나 열렬한 ‘마산쟁이’인 줄은 그의 이력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마산 오동동에서 7년간 카페 ‘시와 자작나무’를 운영했다. 1999년 오픈 후 8년간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 사랑방으로 애용됐던 곳. 지역의 문화 부흥을 꿈꾸던 그는 경제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지만, 이후 2008년 김형준 치과원장의 도움으로 다시 창동의 ‘시와 자작나무’가 문을 열자 그는 다시 각종 문화 강의를 펼치며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권환 문학제, 해양신도시 개발 반대 등 지역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그. 이러한 그의 행적에 마치 태생이 마산 사람인 양 생각되지만 , 그의 고향은 가덕도다. 가덕도 촌아이였던 그는 어린 시절 마산이 ‘환상’이었다고 했다.

    “마산은 제 생애 ‘최초의 도시’였어요. 어린 시절 가덕도 산골에 살다가 이모집이 있는 마산에 나오는 날이면 극장이 있고 쇼핑몰이 있고, 그렇게 신기하고 좋을 수가 없었죠. 늘 마산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그러다 부모님이 마산으로 나오면서 이곳에서 살게 됐어요. 진짜 고향 가덕도가 마음의 고향이라면, 마산은 지금의 고향인 셈이죠.”

    큰 사랑만큼 변해가는 마산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바다의 생명성 보전에 대한 열망도 높다. 그는 마산이 살기 위해서는 합포만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산은 바다 때문에 존재하는 겁니다. 마산의 경제는 바다가 있어서 가능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예요. 새로운 항만을 만들겠다고 함부로 바다를 훼손해서는 안 돼요.”



    산골 아저씨의 느리게 사는 법

    송창우 시인은 산골에 산다. 그의 독자들도 대부분 그 사실을 안다. 그의 편지에는 산골에 대한 소소한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1월, 그가 긴 시간 바라 왔던 꿈을 실천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산골로 들어간 지가 벌써 6년이다. 800여㎡의 산골 나무집에는 손님들에게 365일 열려 있는 사랑채가 있고, 꽃이 있고 나무가 있고 바람이 있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가 산골로 들어간 이유는 느리게 살기 위해서다. 느린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느림이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자연을 느끼고 사람을 사랑하며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는 “불필요하게 바쁘고 복잡하고 욕망하는 것에 지쳤다”며 “산골로 와서 자연과 사람과 여유가 주는 행복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그는 ‘걷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운영하며 매월 셋째 주 사람들과 모여 마산의 곳곳을 걸으며 느림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조급하게 앞만을 바라보고 빠르게 스치고 지나온 그곳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피고 지는 꽃들이 있고,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길들이며 천천히 걸어 보면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버리지 않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됩니다.”

    올해 마흔넷, 바라던 것을 모두 실천하며 살고 있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보이는 시인이지만 또 꿈이 있다고 한다. 나무를 연구하는 ‘나무박사’가 되는 것이다. 느림을 즐기며 꿈을 이루는 그의 계획을 들여다 보자.

    <산골로 이사오고 난 뒤 소나무를 비롯하여 뒷산의 여러 나무들과 이웃하여 살다 보니 자연스레 나무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그리곤 10년 뒤엔 저 나무들의 생태를 아름답게 쓰고 아름답게 들려주는 나무박사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꿈을 위해 올 한 해와 앞으로의 10년 세월을 매진해볼 생각입니다. 우선 나무와 좀 더 친해져야겠습니다. 더 자주 나무에게 말을 걸고,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에 더 자주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나무에 관한 책도 많이 읽고, 먼저 이 길을 걸어 가고 있는 여러 나무 박사님들께도 많이 배워야겠지요. 2년 뒤쯤엔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도 새로 진학해볼 생각입니다. 그러자면 현재 누리고 있는 안정된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될 것입니다. 좀 더 검소하게 살아야 될 것이고 좀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 될 것입니다. 제 새로운 꿈을 위해 기꺼이 짐을 나누어 주리라는 아내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더 잘해야 될 것입니다. 마흔한 살에 새로 도전하는 꿈. 그 꿈이 저의 40대를 열심히 살게 하고 저의 50대를 보람있게 살게 하리라 믿습니다. - 합포만의 아침 中 ->


    글= 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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