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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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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28·끝) 웹툰작가 조세희

만화로 꿈꾸고 ‘웹툰’으로 꿈 이뤄요

  • 기사입력 : 2023-11-23 20: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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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든 어린시절 만화책 보며
    우울·고립감 잊고 무한한 자유 느껴
    기계처럼 움직이는 직장 생활에 회의감
    늦은 나이에 웹툰 공부하며 관련 일 병행
    출판사 만들어 굿즈 제작·웹툰매거진 출판
    문화기획·강연·콘텐츠 제작까지 활동 왕성
    내년 연재할 새 작품 준비도 최선

    집을 나와 시골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면 더없이 상쾌했다. 파란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 있고 8월의 논엔 초록의 벼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논둑에 핀 꽃에 날아드는 나비들. 머리카락을 기분 좋게 흔드는 산들바람. 논둑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메뚜기도 재미있다. 땀 흘리며 논에 방제작업을 하는 어른들을 멀리 보면서 자전거 페달을 더 빠르게 밟는다. 20분쯤 달리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면 소재지가 나오고 학교와 우체국도 보인다. 단골 만화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우면 박은아 만화작가의 순정만화 ‘다정다감’ 다음 편이 나왔는지 혹시 누가 다 빌려 가지는 않았는지 초조해진다. 일본작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백성귀족’도 봐야 한다. 만화가게 문을 여는 순간 기대감으로 소녀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조세희 작가가 작업실에서 차기작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조세희 작가가 작업실에서 차기작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보고 싶은 만화들을 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즐겁지만 면 소재지를 벗어나 다시 시골길로 접어들면 조금은 우울한 기분이 든다. 부모님의 사업이 어렵게 되자 가족들은 시골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벽촌으로 이사 오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원래 내성적이고 말이 별로 없었지만, 시골로 내려오고부터는 더 그랬다. 말수는 더 줄고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골방에 숨어 만화나 책을 읽을 때는 우울함과 고립감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만화를 읽다 보면 어느새 만화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과 합체된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조세희. 만화를 보는 동안에는 ‘다정다감’의 주인공 배이지가 되어 웃고 울고 때로는 삐진 척하거나 심술도 부리면서 어느덧 남자친구 강한결이나 신새륜과의 사이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

    조세희 작가가 발간하는 웹툰매거진 NUTS.
    조세희 작가가 발간하는 웹툰매거진 NUTS.

    만화를 덮고 나면 머릿속에서 방금 읽은 만화의 줄거리가 자신의 상상에 따라 전개된다. 흰 종이만 보이면 좋아하는 작가의 만화를 따라 그렸다. 몸은 좁은 방에 숨겼지만, 만화 속 공간은 생각이 뻗어가는 만큼 확장되고 한없이 넓어졌다. 그 속에서 소녀는 무한한 자유를 누렸고 거침없는 상상을 전개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소녀는 훌쩍 자라 만화가가 되어 있다. 웹툰 작가 조세희(32). 경상남도에서 제공하는 웹툰캠퍼스라는 레지던시의 작은 공간에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조세희는 이제 7년 차 웹툰 작가다. 나이에 비하면 빠른 시작은 아니었다. 그 이유를 들었다.

    “만화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직장생활을 했죠. 그런데 그 획일적 삶의 방식이 너무 갑갑한 거예요. 고민하는 시간이 좀 길어졌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만화가 자꾸 떠올랐죠. 그리고도 고민 좀 더 하다가 결심한 거죠.”

    2023년 경남청년주간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공유발표회.
    2023년 경남청년주간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공유발표회.
    조 작가가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공유발표회를 하고 있다.
    조 작가가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공유발표회를 하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지만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기계처럼 움직이는 직장에 회의를 느끼면서 자꾸 만화가 생각났고 비로소 알았다고.

    “만화가를 꿈꾼 건 아니고 만화 속 세계를 꿈꿨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걸 좀 늦었지만 깨달았고요.”

    만화를 엘리트 과정으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만화학원에서 6개월 정도 수업받은 게 전부. 그렇지만 그림은 자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빈 종이만 보이면 만화를 그렸고 주변에서도 잘 그린다고 감탄했으니까. 그림, 스토리, 연출을 혼자 하면서 나름 열정적으로 웹툰에 대한 공부와 작업을 병행하며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작품이 ‘집 없는 집’이다. 집이 없는 가족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어쩌면 어릴 때 경제적 여건에 떠밀려 시골로 이사했던 그 기억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성공을 바란 건 아니지만 그렇게 가면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 괜찮은 실패였다. ‘괜찮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깨달았다. 실패는 경험 부족이고 실패한 작품도 경험을 더 키워 얼마든지 다시 리빌드(rebuild) 할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문제는 역시 경제.

    부산일러스트페어 NUTS.
    부산일러스트페어 NUTS.

    먹어야 일도 한다. 먹기는 하지만 편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먹으면 체할 수도 있다. 일정한 수입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편안하게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러다간 체하겠다 싶어 수입을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나씩 일을 만들다 보니 만화제작과 웹툰제작은 물론이고 출판사를 만들고 굿즈 제작에 아예 만화로 구성된 웹툰매거진도 출판한다. ‘지역 이야기를 웹툰으로, 지역예술을 만화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만든 잡지가 로컬 만화 매거진 ‘nuts’다. 내용이 꽤 재미있다. 지역의 문화나 지역의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를 취재하고 만화로 재구성하여 독자에게 전달한다. 젊은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다. 여기에 문화기획, 디자인, 콘텐츠 제작까지 영역을 넓히다 보니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엔 달려가서 강의하고 멘토링도 마다 않는다. 공간은 좁지만 회사도 만들었다. ‘㈜새쁨’ 대표다. ‘새쁨’은 새가 나는 기쁨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의미를 물었다.

    “새가 하늘을 날듯이 중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세상을 기쁘게 만들자는 신념을 담았습니다.”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웹툰매거진 홍보 난장데이 부스.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웹툰매거진 홍보 난장데이 부스.

    회사를 만들고 보니 하루 시간이 짧다고 했다. 그렇다고 만화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내년 연재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혼자가 아니고 팀과 함께다. 새 작품 제목은 ‘영광떡볶이 실종사건’. 사라진 아빠와 떡볶이 비법을 두고 가족 간에 밀고 당기는 아기자기한 서스펜스라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가족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마도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극복했던 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일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 조세희 작가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백성귀족’을 좋아했다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백성귀족’은 작가가 시골에서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지었던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만들었다. 시골을 배경으로 가족적인 소재 안에 상황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사소한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묘사했고 세계적인 히트작이 되었다. 그의 꿈이기도 하다.

    경남농아인협회 사회서비스.
    경남농아인협회 사회서비스.

    이제 만화를 빌리러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던 소녀는 없다. 하지만 꿈을 향해 달리던 그 자전거는 지금도 달린다. 소녀가 밟던 꿈의 페달을 이제는 불쑥 자란 작가가 열정적으로 밟고 있다. 어린 시절 가슴 깊이 뿌리내렸던 기억과 감정은 지금 웹툰 작가가 된 조세희의 정서 속에 살아남아 상상을 자극하고 공간을 확장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녀는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열정을 시험해 가는 조세희 작가. ‘멀어 보이는 길도 도착해서 보면 잠깐이다.’라는 말처럼 오래지 않아 꼭짓점에 우뚝 서서 지나온 날을 돌아볼 것이다.

    김홍섭 소설가
    김홍섭 소설가

    김홍섭 소설가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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