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고 1학년 때 풍물동아리서 ‘두두둥’ 북소리에 가슴 설레
풍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대학 졸업 후 한국의 춤·연희 연구
전국 다니며 버나놀이·죽방울놀이 등 배워 관객과 호흡도
전통연희 확대돼 함께하는 즐거움 신명나게 누릴 수 있길 바라
예부터 우리 민족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고 농한기가 되면 함께 어울려 징과 북, 꽹과리 등으로 풍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가뭄으로 흉년을 맞았을 때도, 보리싹과 풀뿌리로 끼니를 연명하던 보릿고개 때에도 이웃과 어울려 지내며 아픔과 외로움을 달랬다. 사람들은 탈을 쓰고 춤을 추며 상류층 앙반과 사회를 풍자하며 웃기를 즐겼다. 그들은 너와 나, 서로 다른 타인이 아니라 그저 하나로 이어진 하늘이며 함께 흘러가는 강이었다. 그 속에 예부터 전해져오는 전통연희를 이어가는 청년 예술가가 있다, ‘춤패 랑’ 대표 심성보(34)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전통연희’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영남 덧배기 북춤“전통연희란 직업적인 연희자들이 특정한 시기와 관계없이 관중들을 위해 연행하는 공연물을 가리킵니다. 풍물과 탈춤의 당시 보편적인 연행예술을 기반으로 줄타기·솟대타기·땅재주·환술, 요술 등 산악·백희의 종목들과 판소리·창극·꼭두각시놀이 등 다양한 연행예술을 말합니다. 정리하면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이어져 온 모든 연행예술을 일컫습니다.”
심성보 예술가가 전통연희를 만난 것은 마산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노박이’라는 풍물 동아리에 가입하였는데 그가 처음 잡았던 악기는 북이었다. 북채로 둥근 가죽을 두드리면 ‘두두둥~’ 소리가 그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풍물 시간이 되면 손과 발에 새싹이 돋는 듯 신이 났다. 북채를 두드리는 강렬한 힘과 속도에 따라 세상은 눈을 뜨며 깨어났다. 북과 북채가 만들어 가는 소리는 그를 세상과 하나로 이어주는 듯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공부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어느 날 문득 일평생 풍물로 놀 것을 다짐하게 됐다. 선유풍물연구소 대표이신 이중수 선생님께 풍물의 길을 배워 지금까지 잇고 있다. 그는 대학을 진학했고, 졸업 후 ‘춤패 랑’ 대표를 맡아 십여 년 동안 한국의 춤과 연희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20대에 대학 졸업 후 심성보씨는 전국을 다니면서 버나놀이와 죽방울놀이에 빠져 있었다. 돌아가는 버나와 앵두나무 막대기는 서로 호흡이 맞아야 하므로 고난도의 훈련이 필요했다. 죽방울 놀이는 진주 삼천포 놀이 전수 중에 단원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독학으로 차근차근 연습했다. 그러다 서울의 이학인 선생님에게 배웠고, 최근 들어 그 놀이로 관객과 하나 되어 호흡한다.
버나놀이는 청주에서 알고 지내던 동생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혼자 연습을 거듭했다. 다른 공연에서 버나놀이를 묘기 부리듯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의 몸동작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천천히 반복했다. 그는 잠을 자면서도 앵두막대기를 잡고 버나 돌리는 꿈을 꿨다. 무대에 서면 돌아가는 버나를 오른 어깨에서 왼쪽 겨드랑이에서 돌리고 다리 아래에까지 내렸다 올리면 요술을 부리는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관중들은 웃음과 호기심을 나타냈고 공연이 끝나면 열광하며 박수를 보냈다.
전통연희 예술가 심성보심성보 예술가는 2007-현 마산오광대보존회 단원, 2007-현 선유풍물연구소 단원, 2014-현 ‘춤패 랑’ 대표, 2022-현 합천대평군물농악보존회 단무장을 맡고 있다. 2019 경남도민예술단 시군순회공연‘삶과 생명의 리듬 용 개 통통’선유풍물연구소 공연기획, 2020 해밝은 춤꾼 한마당 ‘춤패 랑’ 기획, 2021-2022 경남도민예술단 시·군 순회공연 이 땅에 내린 신명 ‘대광대 유희’ 기획 및 공연 선유풍물연구소 공연을 열었다.
그는 2022 경남민예총 청년예술인상, 2023 한국민예총 청년 예술인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묻는 질문에 심성보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 분야가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가끔 어떻게 버티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원래 저는 낙천적인 성격이라 몸이 힘들고 고된 것은 감내하는 편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연습실 문을 열면 악기가 저를 반깁니다. 거울 앞에서 풍물이나 탈춤을 추다 보면 사람들과 즐기며 시간을 건너는 듯한 느낌에 흥이 솟구치고 땀이 납니다. 북채를 들고 손짓과 발짓의 표정을 살피고 연구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저를 지탱해 주는 묘한 힘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나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현실인데 저는 그런 힘듦을 묵묵히 견디는 편입니다. 풍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의지하며 힘을 북돋워 주고 이끌어 주는 이중수 선생님이 계시니까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이 힘들 때는 동료들과 술도 마시며 그 어려움을 나눕니다. 서로 보듬고 상생해서 나가다 보면 후배들도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
전통연희 예술가 심성보그의 얼굴에는 단단한 믿음 같은 것이 엿보인다. 선생님과 심성보씨 자신과 후배들을 연결하는 믿음이 그를 더 강하게 하는 것도 같다.
심성보 예술가는 전통연희의 보다 나은 성장을 위해서 채희완 선생님을 통해 봉산탈춤, 양주별산대놀이 등 북쪽 춤의 정서를 배웠다. 경남의 오광대, 부산의 야류 등의 춤에 대한 다양한 학습을 통해 탈춤의 방향성과 몸길을 찾는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몸짓과 호흡을 알아가고 그것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자신의 숙련된 동작에도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심성보 예술가는 오늘도 새로운 연희를 꿈꾼다. 낯선 리듬과 몸짓으로 변화무쌍한 세계의 색다른 것들을 만들어 간다. 다른 세대와 다른 지역과 다른 민족 등 인종과 문화를 초월한 모든 인류가 하나되는 세상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있다면 4차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현대인이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일인 가족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요. 사람들은 한 장소에 모여도 좀처럼 어울리지 않고 있고 휴대폰만 쳐다봅니다. 그 첫 단계로 지역의 공연행사에서 연희를 접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관객으로서 참가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신명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전통연희가 확대되어 많은 사람이 이웃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신명나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성보 예술가는 오는 10월 1일 추석연휴 ‘마산만날제’에서 마산오광대공연으로 많은 관객을 성황리에 맞을 수 있도록 공연을 준비 중이다.
홍혜문(소설가)
홍혜문(소설가)※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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