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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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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1) 시조시인 김샴

시조 ‘3장 6구’와 운명적 만남… 오늘날, 우리의 절실함을 담다

  • 기사입력 : 2023-05-12 08: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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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박한 문화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며 깊이 감추어진 내면의 감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도내 청년예술인들을 문인들이 만난다. 아직은 불완전체지만, 소중한 이들이 있기에 경남의 문화예술은 희망이 있다.

    열정과 패기로 경남예술을 이끌고 나갈 청년예술인을 이달균(시인), 김홍섭(소설가), 조평래(소설가), 김우태(시인), 이주언(시인), 홍혜문(소설가) 등 6명의 문인들이 ‘文人들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을 주제로 오는 11월 말까지 만난다.

    자신의 일터인 한 서점에서 서가 정리를 하며 웃고 있는 김샴 시인은 책 속에 파묻혀 일용할 양식과 지식을 얻는 것이 큰 행복이라 말한다./김샴/
    자신의 일터인 한 서점에서 서가 정리를 하며 웃고 있는 김샴 시인은 책 속에 파묻혀 일용할 양식과 지식을 얻는 것이 큰 행복이라 말한다./김샴/

    동생과 샴쌍둥이로 태어나

    필명을 ‘김샴’으로 정해

    2013년 경남대 3학년 재학 중

    청년작가아카데미 시창작서

    형식·응축·운율의 시조 만나

    ‘제24회 중앙신인문학상’ 수상

    대학 역사상 최연소 등단 화제

    시인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론을 갖기 원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정 부분 시 이론을 배워야 하고, 지향하는 시의 문법에 따른 치열한 습작 과정을 견뎌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시적 경향과 의지, 방향성을 다듬어 간다. 시인은 험난함 속에서 언어와 씨름하며 원고지와의 동행을 즐기며 자신만의 시론을 정립해 간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충실한 시조 수련의 강을 건너는 한 청년이 있다. 바로 김샴 시조시인이다. 본명은 김태년, 2013년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년(청년작가아카데미) 재학 중 ‘제24회 중앙시조 백일장’에서 연말 장원을 차지해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93년생으로 수상 당시 만 21세였기에 경남대학교 역사상 최연소 시인 등단이란 자랑스러운 별호를 얻은 셈이다. 주목받는 문학인을 다수 배출한 이 대학에서 최연소 등단이란 기록을 세운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교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지역 문단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2013년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중 중앙시조 백일장 연말 장원을 차지해 제24회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샴(오른쪽 첫 번째) 시인.
    2013년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중 중앙시조 백일장 연말 장원을 차지해 제24회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샴(오른쪽 첫 번째) 시인.

    김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동생과 뒤통수와 발이 붙은 샴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천만다행으로 그리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명을 김샴으로 지었단다. 샴쌍둥이로 태어날 확률은 20만분의 1일 정도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허약을 면치 못했다. 현재 이 정도의 신체를 유지하는 것도 하늘의 축복으로 여긴다. 전화 속에서 우린 조금 차분해졌다. 더 많은 이야기를 묻지 않았고, 그 또한 말을 아꼈다.

    “서점서 일하며 책 속에 파묻혀

    일용할 양식·지식 얻는 게 위안

    배고픈 허기가 시인의 길 인도

    정신적 풍요 꿈꾸며 창작 노력

    내 인생은 물론 누군가에게

    운명의 여신이 될 수 있기를 소망”

    지금은 서점에서 일하며 삶을 꾸려가고 있다. 책 속에 파묻혀 일용할 양식과 지식을 얻는 것이 큰 위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조는 절실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 울림이 있다. 시조 형식 속에서 자유의 참맛을 느낀다면 이미 시조에 매혹된 것이다.

    우린 모두 정해진 규칙 위에서 산다. 그 규칙을 지키며 결과를 얻을 때 우린 환호한다. 트램펄린 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정해진 공간에서 만끽하는 자유를 언어로 치환시키면 시조가 된다.

    김샴 시조시인
    김샴 시조시인
    김샴 시조시인
    김샴 시조시인

    그래서 물어봤다. “3장 6구라는 형식적 제약이 있는 시조를 현대의 젊은이들은 어려워한다. 시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경남대학교 청년작가아카데미 시창작 과정을 수강하면서 정일근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자유시와 시조를 병행하며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자유시의 확장성에 대해 말씀하시다가도 언어의 방만함을 경계하셨는데, 그 대안으로 시조의 형식과 응축, 운율을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학생들은 그 수업을 통해 자기 적성에 맞는 장르를 선택하게 되는데, 저는 운명적으로 시조와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습작한 작품을 평가받아 본다는 기분으로 중앙일보에서 매월 시행하는 지상시조백일장에 응모했는데, 운 좋게도 입상되었습니다. 초창기 작품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도 심사위원께서 장점을 보고 뽑아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보면 아쉬움이 많지만, 그런 격려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지상백일장은 매월 응모작을 대상으로 장원, 차상, 차하, 참방 등 입상작을 뽑고, 연말에 입상자들의 신작을 받아 다시 한 편의 작품을 뽑는다. 그렇게 선정된 응모작을 중앙신인문학상이란 이름으로 수상한다. 중앙일보는 중앙신인문학상을 신춘문예로 대신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신춘문예 등단작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쉰다섯의 전장까지 판판이 패자였다

    실패한 한 중년의 마지막 한판 승부

    밀리면 더 갈 곳 없는 종점에 서 있었다.


    이겨도 얻어내는 전리품은 없었지만

    함몰된 눈알 가득 불꽃들 살아 튄다

    세상에 남길 유흔이 살아있는 눈빛이듯.


    마지막 외통수가 비수로 남았을 때

    찌르지 못한다면 찔려야 했었기에

    파르르 손이 떨리던 일대기가 끝났다.


    여름옷 입은 채로 한겨울에 발굴됐다

    바둑 두는 남자의 노숙터 부장품은

    살아서 빛나던 한때 아버지란 칼 한 자루.

    -김샴. 「바둑 두는 남자」 전문


    위 작품이 바로 ‘제24회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이다. 대학 3학년이 쓴 시조치곤 매우 성숙한 느낌이다. 쉰다섯 노숙인 가장의 죽음에 대한 보고서로 읽힌다. 여름에 죽었으나 시신이 발견된 시점은 겨울이다. 시신의 발견을 ‘발굴’이라 표현한 시인의 눈이 신선하지 않은가. ‘아버지란 칼 한 자루’의 칼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응할 아버지라는 무게를 은유한 것이다. 또한, 그가 남긴 유품을 ‘부장품’으로 표현한다.

    이 시조는 현대시조의 문법에 다가가 있다는 평을 얻었다. 고시조는 고시조의 맛이 있고, 현대시조는 현대시조의 맛이 있다. 이방원과 정몽주의 경우를 보자. 두 사람은 절체절명의 시기에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이방원은 부패에 빠진 고려를 뒤엎고 역성혁명을 꿈꾸면서 ‘하여가’를 읊었고, 정몽주는 판을 뒤엎기보다 그 상처에 항생제를 투여해 고려를 되살리고 싶다며 ‘단심가’를 불렀다. 그렇게 시절을 노래한 것이 바로 시절가조, 즉 시조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의 존재는 어느 때나 유효하다.

    그렇다면 현대시조는 어떠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오늘의 이야기를 시조 형식에 맞게 노래하면 된다. 바로 위 김샴의 시조가 그렇게 대답해 준다. 바둑판은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쉰다섯의 한 사내는 이승의 바둑판 위에서 한 번도 승자가 되어 본 적 없다. 시인은 죽어서도 살아있듯 ‘눈알 가득 불꽃들 살아’ 튀는 모습을 한, 그 처연한 죽음을 생각한다. 한겨울에 만난 시신은 여름옷을 입고 있었다. 죽은 이에게도 가족과의 단란한 한때와 부푼 꿈도 있었으리라.

    이달균 시인
    이달균 시인

    “저는 배고픈 허기를 창작으로 승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허기가 정신의 풍요를 꿈꾸었고, 시인의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누가 봐도 김샴의 작품이구나 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물론, 누군가에게 ‘포르투나(fortuna·운명의 여신)’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

    이달균 시인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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