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정식으로 배운 적 없지만
엄마 제안으로 다닌 대안학교서
농사 지으며 ‘순환의 법칙’ 배워
그 시간들이 지금의 시간 만들어폐지 등 모아 종이 만들어 쓰고
물감 재료도 자연에서 얻어
버려진 시계·식탁도 작품으로“특이함 아닌 자연스럽게 살 뿐
지구 환경이 지속가능하려면
자연 해치지 않는 재료 선택
지속가능한 작업 위해 고민중”“살아 볼까요/살면 살아질까요/돈은 없는데 일은 안하네/나는 그림 그리는 삶을 살아요/그 삶 속에는 자전거가 필요해/그래서 그림을 그렸어요/바꿔먹자 바꿔먹자/자전거 만들고 노는 사람이랑/바꿔먹자 바꿔먹자/그림 그리고 노는 사람이랑/교통비 빵빵빵원/두 다리야 고마워 오예//먹고 살까요/먹어야 살 수 있어요/돈은 없는데 놀기만 하네/나는 그림과 함께 놀며살아요/오래 놀거든 든든히 먹어야해/그래서 그림을 그렸어요/바꿔먹자 바꿔먹자/집에 있는 남는 살림이랑/바꿔먹자 바꿔먹자/날마다 그려 쌓인 그림들이랑/도마와 칼 톡톡톡/두 손아 고마워 오예(생략)” 〈장두루‘2022년 1월 26일/바까묵는 노래〉
장두루 작가가 삶과 그림과 자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노랫말을 쓴 이는 그림작가 장두루. 만 24세. 원래 가사는 경상도 사투리 ‘바까묵자’였지만 노래하는 ‘주아’라는 친구가 곡을 붙이며 ‘바꿔먹자’로 바꿔먹었다. 노래를 만든 이유가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다. 경기도 용인의 ‘벗이미술관’에서 화가들을 위해 운영하는 2기 레지던시에 선정되었는데 작업실만 제공할 뿐 숙식이 불가능했다고. 그래서 근처에 저렴한 원룸을 얻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해먹을 수 있는 살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간단한 드로잉을 SNS에 올리고 집에 있는 남는 살림이랑 바꿔먹자고 했더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살림살이나 감자 고구마 같은 먹을거리와 바꿔주었다는 것이다. 지금 유용하게 타고 다니는 자전거도 그때 바꾼 수확품이라고.
장 작가가 차를 우려 먹고 난 티백에 그린 연작.인터뷰 약속에 맞춰서 작업실을 겸한다는 집으로 갔을 때 길이 헷갈려 전화를 했더니 주차한 곳까지 마중을 나온 그녀의 차림새는 ‘독특함’ 그 자체였다. 일단 헐렁한 치마바지는 그렇다 치고 여러 색상의 천조각을 이어 만든 블라우스는 그대로 회화다. 사람이 액자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고 했던가. 맨발이다. 집으로 들어가니 마당에 서 있는 엄마도 맨발. 차를 마시며 특이하다고 했더니 ‘특이함’으로 자신을 덧칠하지 말아달라고 완강하게 말한다. 자연스럽게 살 뿐인데 그런 식으로 포장되고 싶지 않단다. 이해했다. 그래도 특이하다. 그 말 말고는 작가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작업 과정도 특이하다. 종이를 만들어 쓴다. 폐지를 주워 모아 물에 불리고 찧어서 죽 쑨 다음 김 뜨듯 발에 떠서 말리면 작가 전용 화선지 혹은 캔버스가 된다. 물감 처지도 비슷. 뜰에 있는 치자, 자리공 같은 꽃이나 식물은 물론 돌도 물감재료다. 돌을 망치로 잘게 부수다가 쇠절구에 더 잘게 빻아서 바인더(접합제)를 섞으면 작가 표현처럼 물감이 되는지는 몰라도 작가는 물감으로 사용한다. 아직은 실험 중이란다. 어떤 식물, 어떤 광물의 보존성이 더 좋은지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액자 처지도 다를 게 없다. 버려진 벽시계는 뒤쪽 기계와 숫자판을 빼면 액자가 된다. 보통은 그림에 액자를 맞추지만 장두루 작가는 필요하다면 액자에 그림을 맞춘다. 버려진 식탁을 주워와 새긴 판화는 풍성한 자화상 식탁이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없는 자화상을 종이에 찍은 뒤 눈동자와 머리카락 그려 넣는 시점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나온다. 우려먹은 티백에 그림 그리고 연작모음으로 액자를 하면, 보는 관객이 고민 좀 하는 작품이 된다.
집 마당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로 물감 재료를 만든다.“지구 환경이 지속가능하려면 그런 것들을 해치지 않은 재료를 선택해야죠. 그렇게 함으로써 감정상태까지 지속가능한 작업을 하기 위해 고민 중이에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 학교도 중·고등학교를 지리산에 있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그냥 보냈단다. ‘맨발의 엄마’에게 물었다.
“아주 예전에 시골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은 아주 오래도록 남아있어요. 그런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참 특이하다. 요즘 그런 생각으로 자녀를 산골짝 대안학교로 보내는 부모가 있을까. 장두루 작가는 생태주의 환경을 고수하는 그 학교에서 순환의 법칙을 배웠다고 했다. 아이들이 직접 농사짓고 그 수확물이 밥상까지 올라오는 걸 보면서 지낸 그 시간들이 지금 작가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정 작가가 태블릿에 있는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화가라고 칭하고 싶지만 그림작가로 불러주는 게 그녀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그림에 글을 붙여 쓰는 것도 이유지만 그녀의 그림은 그린다기보다는 때때로 ‘삘’ 받았을 때, 그래서 뭔가 내면에서 차고 오를 때 가슴의 지퍼를 주르륵 열고 하나씩 꺼내 툭툭 던져놓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처음 얼핏 보면 어라 이게 뭐지? 재미있다, 웃긴다, 그러다가 감상자는 점점 고민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고정관념으로 이해하기는 너무 딴 나라 그림 같은데, 볼수록 자꾸 이해가 되는 자신을 이해하기 불편해진다. 장두루의 그림은 쉽다. 현대회화에 익숙한 일반인에겐 오히려 이상하다. 비구상이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다양하게 주워 모은 이질적인 재료나 작업과정은 거의 전위적 수준이다. 그런데도 친근하다. 그림도 재료도 우리가 늘 보아왔던 것. 익숙한 것들의 조합을 낯선 형식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익숙한 대상의 전혀 다른 모양을 발견한다는 것이 장두루 작품의 맛일 것 같다. 경기도 용인의 미술관 전시할 때 큐레이터는 장두루 작품을 ‘정크아트’로 분류했다. 버려진 물건들의 본래의 쓰임새와 전혀 다른 작업과정은 ‘오브제아트’로 분류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정크는 재료일 뿐.
작가는 연작 형식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저것 많이 주워오다 보니 정작 방은 폐품으로 가득 차서 본인은 방 밖으로 쫓겨나는 경험의 ‘꽉 찬 빈방’ 연작작업 그리고 ‘바까묵자’ 연작, 그리고 지금은 ‘낭가놓기(남겨 놓기)’ 작업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미래의 ‘나’를 위해 얼마 전부터 적금을 들었다. 그게 ‘낭가 놓기’다. 쉽지 않단다. 벌써 한 번 빠졌다고.
다른 이들이 소모하고 버린 시간의 흔적들을 주워 모아 자연과 뒤섞은 다음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장두루 그림작가. 일상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일상이 되니 ‘순환의 법칙’은 잘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속가능’이다. 이 부분은 장두루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작가는 지속가능한 고민을 찾은 셈. 고민이 없다면 삶도 없으니까.
김홍섭 소설가김홍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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