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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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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 못함’이 없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 사무소 대표 변리사)

  • 기사입력 : 2021-06-29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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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금니가 아파 찾은 동네 치과 의사는 다짜고짜 이를 뽑자고 한다. 미덥지 않아 다른 치과로 갔더니 “아직 좀 쓸 만하니, 최대한 치료해서 조금이라도 더 쓰고 봅시다”라고 하며 잇몸 치료를 해준다. 몇 번 치료를 더 받은 어금니는 근 7년 넘게 버텨줬다. 무릎이 아팠을 때도 그랬다. 당장 수술하자는 말을 뿌리치고 옮겨간 다른 병원에서는 운동 처방을 권한다. 무릎은 수년 동안 안녕히 지내고 있다. 그들에게서 참된 의사의 모습을 느낀다.

    특허 침해, 기술 탈취, 영업 비밀 이슈 등 기업 간 갈등 사건을 만나면,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기가 막힌 증거 확보 사례나 절묘한 외통수 논리로 승기를 잡은 무용담 등으로 싸움닭 별명까지 듣게 된 술안주 거리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승소가 반드시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극적인 승소를 쟁취하더라도 비즈니스 관계가 망가져 기업이 위태로워졌다면 그것은 결코 승리가 아니다. 기업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개별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성공임을 깨닫고 기업 간의 갈등을 소송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게 되었다.

    ‘진정 훌륭한 변호사는 법을 이용하지 않는 해결책들을 충분히 잘 아는 사람이다’라는 법언이 있다. 변리사, 변호사 등 대리인에게 있어 법을 통한 문제 해결 수단은 의사의 수술칼과 같아서, 대체로 수술 자국과 같은 흉터를 남기게 마련이다. 기업 간의 갈등은 주로 비즈니스에 기초한 것이기에, 그 원인과 당사자들의 니즈 등을 잘 살펴보면 서로가 만족하는 다양한 창의적인 대안을 협상 등을 통해 이끌어 낼 수 있으므로, 흉터 없는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손자병법 모공 편). 전쟁에서 잘 싸우는 장수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가 진정한 명장이라는 말이다. 장수의 핵심 역량은 전쟁에서 싸우는 능력에 있다. 그런데 고금 최고의 병법서는, 역설적이게도 장수들에게 핵심 역량을 쓰지 말고 이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다들 전문 역량의 망치를 나름 하나씩 들고 있다. 과제를 만나면 그들은 다들 자신의 망치를 들고 두들겨 해결하려 든다. 하지만 정말 훌륭한 전문가는 가급적 자신의 망치를 쓰지 않으려 애쓴다. 위대한 스승은 지식 주입 없이 깨닫게 하고, 훌륭한 리더는 부리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게 한다. 그처럼 명의는 수술 없이 치료하고, 명장은 싸우지 않고 이기고, 좋은 변호사는 소송 없이 분쟁을 풀고, 뛰어난 변리사는 특허 없는 특허 전략을 구사한다.

    “높은 덕은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 못함’이 없고, 낮은 덕은 ‘함’으로써 ‘하지 못함’이 있다(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도덕경 제38장).” 인위(人爲)를 배제하여 자연의 순리에 맡기라는 ‘무위(無爲)의 도’의 가르침이다. 법률, 특허, 세무 등과 같은 모든 전문가 영역은 세속의 이해를 규율하기 위해 인간이 창안한 것이니, 인위의 극치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인위의 도’는 ‘낮은 덕’의 경지로서, 인간의 갈등 해결에서는 ‘하지 못함’의 미흡한 한계가 크다.

    하지만 도덕경의 가르침에 따라 전문가들이 ‘하지 않음’의 도를 취하면, 자연의 순리에 따른 조화나 상생 등과 같은 고귀한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그 고귀한 가치는 모든 갈등을 자연 순리에 따라 근원적으로 풀어내어, 인위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더 원만히 해결한다. 그래서 진정 훌륭한 전문가는 무위의 도를 실천하여 자신의 핵심 역량을 쓰지 않고 해결한다. 이를 일러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 못함’이 없다 할 것이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 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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