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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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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구제역 휩쓸고 간 김해 주촌면 원지리 대리마을

마을 곳곳에 거대한 돼지무덤들
돼지 울음소리 끊긴 축사 적막감만…

  • 기사입력 : 2011-0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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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일 오후 1시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대리마을, 한낮인데도 마을은 고요했다. 돼지 울음소리로 가득 찼던 축사는 주인을 잃은 채 적막감만 흘렀고, 밭과 산이었던 마을 곳곳은 거대한 ‘돼지 무덤’이 들어섰다.

    지난 1월 24일 마을의 한 농가에서 도내 첫 구제역 의심축이 발견된 후 보름이 지난 마을은 구제역이 할퀴고 간 상처가 낭자했다. 그동안 마을 13개 농가에서 돼지 2만여 마리를 땅에 묻었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는 3곳뿐이지만, 백신접종이 안된 인근 농가 모두 예방 차원에서 대량 살처분됐기 때문이다. 주촌면 돼지의 80%가 밀집됐던 양돈 대표마을의 위용(?)은 텅 빈 축사 수와 11개의 살처분 매몰지만으로 짐작할 밖에다.

    마을 사람들에겐 이러한 풍경이 아직 생경하고 불안하다. 한 농가 앞에서 만난 김은하(84) 할머니는 “좋던 마을이 다 죽어버렸다”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고, 한 공장 앞에서 만난 인부 박정동(43)씨는 “매몰처리 후 처음에는 악취가 심했는데, 지금은 덜 나긴 하지만 봄, 여름이 오면 또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구제역으로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대리마을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한 가운데 9일 오후 한 돼지 축사가 텅 비어 있다. 살처분한 돼지들의 매몰지(아래 사진)가 농가 뒤편에 있다./김승권기자/

    하얀 생석회로 뒤덮인 마을길로 오가는 사람은 드물었고, 굳게 닫힌 대문 앞마다 세워진 ‘출입금지’ 푯말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2~3농가에는 흰 방역복을 입은 방역단이 마지막 소각처리가 한창이고, 돼지들의 흔적을 태우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일부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축산 농가의 텅 빈 축사에는 구제역 방역에 안간힘을 다하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입구에는 개인 소독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바닥에는 석회가루가 쌓여 있다. 사료통은 비어 있고, 축사에 쓰이던 기구들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환풍기와 천장에 거미줄이 겹겹이 쳐진 축사 안은 칸칸에 매달아 놓은 생일과 수정날짜 등이 적힌 돼지의 이름표만이 얼마 전까지 주인이 있었음을 알리는 듯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 마을의 농장주들은 벌써 18일째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살처분에 직접 참가한 인부와 공무원들은 밖을 드나드는데 자신들의 발만 꽁꽁 묶어 놓는 게 이해는 되지 않지만, 혹시나 다른 농가에 피해를 끼칠까 봐 묵묵히 견디고 있다. 다만 아무도 이동제한이 언제까지인지, 다시 재입식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주는 이가 없어 답답하고 갑갑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마을의 박씨 부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학식을 앞둔 두 아이의 입학준비 때문에 언제쯤 이동제한이 풀릴까 노심초사 전화기만 붙들고 있고, 몇몇 농장주들은 ‘재기가 가능하긴 할까’라는 막연함과 불안감 속에서도 축사를 청소하며 어렴풋한 희망을 품어내고 있었다.

    농장주 유호상(48)씨는 “땅에 묻힌 녀석들 생각에 쓸쓸하고 적적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축산 농가를 그만두자니 할 일이 없고, 맨땅에 다시 시작하자니 또 이런 일을 겪을까 봐 불안하고 막막하기만 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50여 가구 남짓한 작고 평온한 마을에 찾아온 최악의 겨울, 꽃이 피는 봄이 되면 마을에도 희망의 꽃이 필 수 있을까.

    마을을 등 뒤로 한 채 돌아 나오는 길목에 자리한 입구 방역초소 앞, 인체소독기는 제 역할을 잃어버린 채 찾는 이 없이 방치돼 있고, 방역복을 입은 관리자도 없었다. “구제역이 더 퍼질수록 재기도 늦어지니깐 우리도 더 죽을 맛이 되는 거지요. 한림에 계속 번진다는데, 방역 제대로 해서 빨리 사그라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농민의 거친 어투의 절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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