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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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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51) 남강 24- 함안군 함안천~의령군 의령읍 하리

처녀뱃사공의 슬픈 사연 강물 따라 흐르고…

  • 기사입력 : 2010-02-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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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천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이자 철학자인 지오 폰티는 그의 저서 ‘건축예찬’에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의 첫 번째로 성직자, 두 번째로 교육자, 세 번째로 의사, 네 번째로 건축가를 꼽았다.

    어느 직업이나 나름대로 높은 가치가 있지만 나라의 미래를 길러내는 교육자는 다른 직업보다 엄격한 도덕성과 올바른 국가관이 필요하다.

    광려산에서 물길을 따라가다 입곡저수지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남강으로 흘러가는 운곡천을 따라가다 함안천을 만났다.

    남강 물은 자연에게 아낌없는 생명의 힘을 주며 사람들에게도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 처녀뱃사공 노래비·악양루= 함안군 법수면에서 대산면 방향으로 함안천을 가르는 악양교를 건너면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작사가 윤부길씨가 유랑극단 시절 5일 장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악양 나루터를 지나게 되었다. 한국전쟁에 나가 소식 없는 오빠를 기다리며 오빠 대신 뱃사공 일을 하게 된 처녀 이야기를 듣고 만든 노래가 바로 ‘처녀 뱃사공’이다. 당시 처녀 뱃사공의 종손 박국석씨가 부근에서 둘안횟집을 운영하고 있고 아들 박준수(17)군이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처녀뱃사공 노래비에서 강을 따라 길을 건너면 북쪽 절벽에 악양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0호)가 있다. 악양루는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것으로 조망이 아주 좋은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여러 곳을 답사했지만 악양루처럼 아래로 남강이 흐르고, 앞에는 넓은 들판과 법수제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연경관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악양루는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했고,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악양루에는 청남 오제봉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악양루 건너 강변에서 낚싯줄을 여러 개 담그며 세월을 낚고 있는 심재완(62)씨를 만났다. 한참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보니 같은 종씨였다. 이틀 밤을 지냈는데도 물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며 허허로운 웃음을 보였다. 약 20년 정도 낚시를 했는데 낚시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1주일을 한곳에서 물고기를 기다리며 세월을 낚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주변에 있는 10리가 넘는 법수제방은 근래 걷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낚시꾼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법수 제방을 따라 의령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정암루·충익사=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군북 들판을 지나면 남강이 함안과 의령을 가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지켜보던 구 정암교는 노후로 인해 차량통행이 금지됐고 대신 새 정암교가 의령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구 정암교 옆 언덕 위에 정암루가 있다. 정암루는 조선 중기 취원루가 있었던 자리인데 소실돼 1935년 이 고장 유림과 유지들이 그 자리에 정암루를 지었다.

    다리가 세워지기 전에 정암루가 있는 아래쪽에 정암나루가 있었다. 이곳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이 왜군을 격퇴시킨 전적지로 유명하다. 정암루에 서서 바라보이는 남강에 비치는 햇빛도 은빛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군북면 일대의 아름다운 조망은 나그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구 정암교 아래에는 솥 모양의 바위 하나가 있는데 정암 또는 솥바위라고 한다.

    충익사에는 곽재우 장군과 관련된 의병탑, 사당, 기념관 등이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와 그 휘하 장병들의 위패가 있는 사당이 있다. 곽재우 장군은 명종 7년(1552)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했는데 문무에 뛰어났으나 관직 없이 초야에서 지냈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병이 침입해 서울로 진격해 오자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하며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막았다.

    기념관에는 곽재우 장군의 전적도와 보물 제671호로 지정된 장검과 마구, 벼루, 연적, 철인, 갓끈 등이 소장돼 있다. 이곳은 유치원 학생들은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도 교육의 장소가 되고 있다.

    충익사를 나와서 도로를 건너니 의령 5일장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곳곳에 들어서는 바람에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5일장에 오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장을 다녀오는 어머니께서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 붕어빵이며 뻥튀기가 최고의 인기였다. 마을에 뻥튀기 장사가 오면 기계를 대신 돌려주고 뻥튀기를 얻어먹던 기억이 새롭다.

    의령 5일장에서 뻥튀기를 하고 있는 아저씨는 평소에는 농사일을 하다가 장날에만 나온다고 했다. 혹시 여동생이 알까 부끄럽다며 한사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장난 섞인 농담을 하며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뻥튀기 기계가 유명한 모양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인기라고 자랑을 한다.

    시장을 돌아 나오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니 옛날 과자를 팔고 있었다. 5000원어치를 사니 덤까지 얹어주며 여러 종류의 과자를 한 봉지 가득 담아 주었다. 노인들이 오고가며 과자를 집어 먹어도 더 먹으라며 주인은 웃고 있었다. 답사에 동행했던 아내와 딸에게 시장에서 샀던 옛날 과자를 먹어보라 했지만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 보천사지 삼층석탑·보천사지 부도= 의령천과 만나는 남산천을 따라 남천교를 건너면 보천사지로 가는 길이다. 보천사는 수암사라고도 전해지며 통일신라 경덕왕 때(742~765) 창건됐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절의 흔적은 없고 보물 제373호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472호 보천사지 부도가 계절을 잃어버린 구절초에 쌓여 황량한 절터를 지키고 있었다.

    삼층석탑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중기단에 방형 3층 탑신을 가진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고 있다. 보천사지 삼층석탑 뒤편으로 근래에 불사가 한창인 용국사 입구가 있다. 안내소에서 노승이 10원짜리 동전을 333개씩 교환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333개의 관세음보살이 절집까지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데 불자들이 10원씩 시주를 하면서 합장을 하며 가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절터 북쪽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팔각원당형의 깔끔한 보천사지 부도가 있다. 부도 윗단에 용과 구름무늬를 얕게 돋을새김했고 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돼 있었다. 탑신의 8면 중에서 한 면에 문짝과 자물쇠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tip.맛집

    ◆둘안횟집 :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 악양동 137. 박국석 ☏584-3393. 주인이 제방 넘어 남강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로 요리를 해준다. 법수 제방 부근에 있는 유일한 식당으로 사람들이 붐빈다. 어탕국수 6000원, 메기매운탕 2만5000원, 붕어·잉어찜 3만원

    ◆풀내음 : 의령군 가례면 봉두리 233. 박준상 ☏572-3267. 메밀국수 1인분 6000원, 파전·빈대떡 1만원. 멸치를 3~4시간 이상 푹 달인 국물에 메밀로 빚은 국수 면발을 삶은 다음 소고기 장조림을 잘게 찢어 곁들여 매콤하면서도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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