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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머물 때와 떠날 때- 이광수(소설가)

  • 기사입력 : 2010-02-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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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생업을 목적으로 갖는 직업 이외에 자의든 타의든 여러 사회단체에 소속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사회 시스템 자체가 소속되도록 얽어매기 때문이다. 학연, 지연으로 생긴 동창회, 향우회를 비롯한 취미클럽·친목회 등과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여러 이익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아래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의든 타의든 특정단체에 소속되고 나면 그 조직을 움직이는 시스템에 의해 위계질서가 성립된다. 조직의 장을 선출하고 임원과 운영요원으로 조직체계가 완성된다.

    또한 그 조직을 통제할 정관이나 회칙 등 각종 운영규정을 만든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인간은 스스로 규제의 틀을 만들어 그 규제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속박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지닌 이중적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위계체계는 항상 정치성을 띠기 때문에 권력이 작용한다. 그리고 그 권력은 파워를 낳고, 개인적인 명예심을 부추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권력작용의 통제장치인 키를 권력을 쥔 자가 쥐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의 최고위직에 앉게 되면 대내외적으로 권력이 형성된다. 그리고 매슬로가 말한 명예에 대한 욕구가 충족된다.

    그러나 예부터 어떤 자리든지 머물 때와 물러날 때를 잘못 판단하여 실기하면, 스스로 그 권력의 제물이 되어 파멸을 면치 못한다고 하였다.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그 조직은 침체의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조직혁신은 물 건너가고 만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인 조직이든, 그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패거리들로 인의 장막이 형성되어 하의상달이 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그 조직은 소통과는 거리가 먼 동맥경화증을 앓게 된다.

    오는 6월 2일에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선거가 있다. 특히 이 지역엔 창마진 통합을 계기로 108만 시민의 대표 자리를 노리는 현역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중앙 및 지방 정·관가의 정치지망생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자천타천으로 후보자의 하마평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벌써 출사표를 던진 사람도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얼마 전 현역 도지사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하여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그분의 불출마를 두고 그 진의에 대한 말들이 있지만, 머물 때와 물러날 때를 잘 판단한 현명한 결단이 아닐수 없다. 그분의 결단에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후안무치, 자가당착에 빠져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아니면 안될 것처럼 유아독존의 도그마에 빠진 얼 빠진 사람들도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 사람 좀 더 그 자리에 있어 주었으면, 그 사람 떠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붙잡아도, 웃으면서 훌훌 털고 물러나는 사람. 아쉽지만 박수 칠 때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반면, 더 해먹겠다고 기를 쓰며 버티다가 개망신 당하고 밀려나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초라하고 추하게 보이겠는가. 아름다운 퇴장, 그것은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연속 선상에서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잘 헤아릴 때 붙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 이 원칙만 잘 지켜져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반목과 대립의 갈등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다른 단체는 어찌하든, 자칭 최고 지성의 결사체라는 예술하는 사람들의 모임만이라도, 박수 칠 때 떠나는 그런 아름다운 전통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광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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