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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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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통통배와 바람, 그리고 삶- 김영근(수필가)

  • 기사입력 : 2024-03-10 20: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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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배와 우리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드라마 ‘마의’의 대사에 의하면 “바다 위의 배들은 모두 거친 비바람과 파도를 넘어야 하네. 세상살이에도 그처럼 시련과 고난이 있지. 허나 그 순간에도 자네가 가야 할 길을 정하는 것은 자네가 올린 돛의 방향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라고 읊조린다. 질곡의 삶을 헤쳐 나가려면 좌표를 잘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든지 삶의 방향을 자기의 의지대로 핸들링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얼마 전 마음이 맞는 몇 분이 필리핀 문화체험을 하게 되었다. 야자나무가 곧게 쭉쭉 뻗어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해안선에 없어서는 안 될 포즈다. 구질구질한 곁가지를 거부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휴대폰을 껐다 켜면 요즘은 자동으로 로밍된다. 파파고를 깔아 놓으면 세계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우리말을 하면 상대 국가 언어로 전달되고, 상대방에서 말을 하면 한국말로 목소리가 들리어 온다.

    다음날 따알 화산을 찾았다. 그곳은 2020년 섬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멀리서 보아도 불에 그을린 흔적이 눈에 띄었다. 1977년 이후 43년 만이란다. 예전처럼 조랑말 트레킹과 분화구는 없어졌지만, 탐방객은 그곳을 찾고 있었다. 화산을 둘러보기 위해 통통배에 몸을 실었다. 왕복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가이드가 귀띔했다. 처음에는 물살도 그리 세지 않아 순조롭게 나아가는 듯했다. 20분쯤 지나니 바람의 강도가 세지기 시작했다. 파도가 굽이치니 롤링으로 물이 배 위를 덮쳤다. 당연히 옷은 젖을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다다라서도 정박하지 못했다. 가까이에서 화산 분화구를 구경하고 뱃머리를 돌려 나오는데 바람의 강도가 가당찮았다. 그때부터 바람과 통통배가 밀고 당기는 시소게임이 벌어졌다.

    어찌 보면 통통배와 바람, 파도는 삶의 방정식과 닮은 듯하다. 인간은 고해(苦海) 위에 뜬 일엽편주(一葉片舟)다. 승선한 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찼다. 뭍으로 거의 다 와서 또 문제가 생겼다. 밧줄을 던져 배를 고정시켜야 하는데, 바람이 불어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남자들이 로프를 잡고 바람과 힘겨루기를 하다 몇 번을 돌고 돌아 근근이 접안시킬 수 있었다. 한 시간 예상한 것이 두 시간가량 걸렸다. 밖으로 나오니 원주민의 하는 말이 가관이다. “화산수라 옷이 다 젖어도 몸에는 좋다”고 위로를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다. 통통배의 동요로 한동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멍했다.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듯이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삶이다. 모든 것이 찰나다. 달콤한 부귀영화나 근심도 한순간 바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행동으로 읽어 내듯이 바람의 마음도 느낌으로 읽어 낼 수 있다. 때로는 느낌으로 바라보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서로 부대끼고 얽히고설킨 가운데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나아간다.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고, 바람도 비켜 가는 그런 삶이길 바라면서.

    김영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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