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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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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동학이 말하는 생명 운동- 김경복(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24-01-10 19: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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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3년 진주에서부터 시작된 백정 계급들의 형평운동(衡平運動)이 다시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기다. 형평운동은 보다 나은 체제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성적 행위로서 유토피아 사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유토피아는 당대의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사회체제를 뛰어넘어 보다 살기 좋은 체제를 꿈꾸는 사상을 가리킨다. 헤겔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는 자유의 확대 역사로 볼 수 있듯이 유토피아 사상의 역사이자 유토피아 사회상을 그려보는 몽상의 역사이기도 하다.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갈망과 꿈의 동력이 ‘선취(先取)’의 확신을 가지고 움직일 때 그 동력은 강력해지고 세상은 개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시 백정들이 계급해방의 차원에서 갈망하던 사회적 유토피아는 아직 완전히 달성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계급적 차별과 부당한 편견의 문제점들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분적 차별에 의한 모순적 사회현상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새로이 경제적, 문화적 차별에 의한 모순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이 오늘날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연생태계 파괴로 인한 지구 행성 자체의 위기가 아닐까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태계의 위기 자체를 인간 사회의 위기로만 인식하였다면, 지금은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변형, 파괴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격화되고 있다. 심층생태주의 사상에 따른 인간중심주의의 폐해에 대해 논의하던 수준에서 이제는 보다 실천적이고 혁신적인 차원에서 자연생태계의 보존 방법과 인간 사회체제의 개선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학술적 차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회운동’으로 전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적 모순을 말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 백정들이 울부짖으며 추구했던 형평운동은 오늘날에는 생태계 파괴로 사라져가는 그 많은 비참한 생물종들의 간절한 비원으로서 형평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니 생물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생물의 토대이자 터전이 되는 무기물들의 파괴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하고 배려하는 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운동을 이끄는 사상으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때 필자는 동학에서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심화로 이야기하는 ‘이천식천(以天食天) 이천화천(以天化天)’의 사상을 떠올리게 된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말했다고 알려진 이 말씀은 인간으로서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려주는 내용이다. 단어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한울님이 한울님을 먹고, 한울님이 한울님으로 된다’는 말이다. 인간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데, 그 먹는 대상으로 자연, 즉 동식물도 인간과 똑같은 영적 존재, 하늘 같은 존재라는 의미가 이 말씀 속에 들어있다. 그것은 함부로 다른 생물을 해치거나 상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을 비롯한 이 자연계의 모든 것들이 ‘한울님’ 같은 존귀한 존재들이기에 서로서로 순환적 질서 속에 놓여야 하고, 그럴 때 비로소 모든 존재들은 제 존재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천식천이 이천화천이 되는 경지는 바로 모든 세계가 나와 더불어 진정한 차원의 자유와 평등을 공유하는 유토피아 상태, 특히 자연생태계를 배려한 차원에서 보자면 생태적 유토피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함이 아닐까?

    이 내용은 생태주의 사상의 가장 높은 심급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다. 생명의 형평운동은 나를 비롯한 이 세계의 격을 가없이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진정한 삶과 존재의 의미를 실현해주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주에서 발생한 백정들의 형평운동은 오늘에 와서는 동학사상이 말하고 있는 자연생태계의 형평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김경복(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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