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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달걀과 계란- 김종영 시조시인(201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 기사입력 : 2023-11-02 19: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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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걀 그림을 보여주면서 달걀과 계란 중 한 단어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할까? 초등학생 559명을 대상으로 선택한 단어를 조사한 설문(2023.10) 결과 달걀이 31.8%, 계란이 68.2%로 나타났다. 달걀을 떠올린 학생 비율은 저학년(37.1%)보다 고학년(25.6%)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시점과 비교해 앞으로 달걀의 사용 빈도가 줄어들어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계란은 한자어이고 달걀은 순우리말이라 그런지 계란 대신 달걀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두 단어 모두 쓸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둘 다 소중한 우리말임은 틀림없지만 순우리말인 달걀에 애착이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말에도 생명이 있어서 한자어에 밀려 사용 빈도가 줄어들면 사라지게 된다. 사라진 순우리말에는 온(백), 즈믄(천), 람(강), 뫼(산) 같은 말들이 있다. 예를 든 말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만, 어제-오늘-내일-모레-글피 중에서 내일(來日)만 한자어인데 내일이라는 말 대신 사용되었던 우리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말과 글에도 계급이 있다. 조선시대 갑오경장 이전까지 한자가 국문이었던 시절 한글은 무시당하고 우리말은 천시했다. 어릴 때 높임말을 배우면서 많이 들었던 집(댁), 나이(춘추), 밥(진지) 등 한자어가 높임말이고 우리말은 낮추었다. 자국(自國)의 말과 글을 천시하여 하층에 깔고 살아가는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 말과 글은 수난의 시대를 겪어 왔다. 지독한 사대주의 아래 한자나 한자어에 치여 지냈고, 갑오경장에서 겨우 한글이 국문의 지위를 얻었지만, 그것도 잠시 일제 강점기의 조선 말글 말살 정책에 우리 말글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해방되어 한글전용 정책이 추진되어 공문서는 물론 신문과 잡지들도 한자 사용을 줄이고 한글 가로쓰기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전성시대가 온 것은 아니다.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영어와 외래어의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들어앉은 길거리의 간판, 한글이 한 글자도 없는 영어메뉴판을 내보이는 식당을 고급 식당이라고 용인하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쓰리다.

    요즘 K문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의 세종학당에는 우리 말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넘쳐나고 K팝을 즐겨 부르는 외국 젊은이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최근 베트남이 제1외국어로 한국어를 추가 지정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우리 말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관심만이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한자어 ‘계란’에 밀려나는 고유어 ‘달걀’의 건투를 빌며, 우리 말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종영 시조시인(201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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