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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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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진해 어촌마을 명물 톳짜장면으로 사랑 전하는 이광용 씨

톳짜장면으로 ‘인생 3막’… 건강+나눔+사랑 한 그릇에 담았다

  • 기사입력 : 2023-07-26 21: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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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과 맞닿아 있는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의 한 작은 어촌마을. 옛 시골 장터를 연상케 하는 1층짜리 낡은 건물과 빛바랜 간판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골 정취를 느끼며 골목 사이사이를 거닐다 보면 바다를 등지고 있는 한 중식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 중식당에서는 특별한 짜장면을 맛볼 수 있다. 짜장면의 주재료라고 볼 수 있는 면을 바다의 불로초라 불리는 ‘톳’으로 만든다.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 매력적인 톳짜장면은 어느새 입소문을 타 전국 각지에서 찾는 용원의 명물이 됐다. 어떤 이가 톳으로 면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옆집 아저씨처럼 소탈한 웃음을 보이는 이광용(58) 거가대교 대표가 반긴다.

    톳이라는 식재료가 생소했다. 톳면을 만들게 된 연유에 대해 말하는 그가 짜장면 한 그릇에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짜장면 한 그릇을 먹더라도 든든하고,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광용 대표가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에 있는 자신의 중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이광용 대표가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에 있는 자신의 중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어릴 적 운동선수 꿈 부모 반대로 포기
    23살 때 의류매장 취직 두 번째 꿈 좇아
    3년간 직원으로 일하다 의류매장 창업
    아웃도어가 의류시장 장악해 결국 폐업


    ◇좌절된 두 번의 꿈= 전라남도 완도의 금당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 대표는 수산업에 종사하던 부모님을 따라 바다에 나서며, 자연스럽게 수영을 익히게 됐다. 학교 수영대회가 열릴 때면 상급생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고, 운동신경 자체가 좋아 구기 종목과 달리기, 씨름 등 여러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모든 운동을 곧잘 소화하던 그는 운동선수를 꿈꿨지만, 부모님은 아들의 꿈을 마냥 응원할 수 없었다.

    “수산업을 하기 전에 아버지는 유도선수였고, 어머니는 농구선수였어요. 당시에 운동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면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서 결국 운동선수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이후 이 대표와 그의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창원에 정착하게 된다. 운동선수의 꿈을 접은 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평소 옷을 좋아하던 그는 의류매장 창업을 꿈꾸게 된다. 그가 23살이 되던 해 의류매장에 취직해 두 번째 꿈을 좇기 시작했다. 3년간 직원으로 일하며, 의류 시장의 동향을 파악한 그는 그간 모은 돈으로 의류매장을 차리게 된다.

    “당시에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 월급이 50만원이었어요. 저는 친구들 월급을 하루 만에 벌 만큼 장사가 잘됐습니다.”

    자신이 창업한 의류매장이 승승장구하자 이 대표는 사업을 확장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하게 됐다. 하지만 그 시기 아웃도어 의류가 패션 시장을 장악하면서 매장을 찾는 손님은 점차 줄기 시작해, 결국 폐업에 이르게 됐다.


    의류사업 실패로 빚더미 앉아 힘든 시기
    지인에게 중식 배워보라는 제의 받아
    그길로 칼질·수타면 뽑기 등 연습 매진
    수백번 착오 거쳐 1년 만에 톳면 개발


    ◇짜장 그릇 안에 톳면이 담긴 이유= 의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된 이 대표는 자신의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도 못할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 일을 도우며 전전긍긍하던 그는 중식당을 운영하던 지인으로부터 중식 요리를 배워보겠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자녀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했던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 길로 중식당에서 일하며, 수년간 칼질과 웍 다루는 법, 수타면 뽑기 등 밤낮없이 요리 연습에 매진했다. 이후 수타면을 전문으로 하는 자신의 중식당을 개업하게 되는데, 대박이 났다. 그는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부산의 한 산업단지 인근에 2호점을 차렸다. 식당 홍보차 여러 공장을 돌아다니던 그는 공장 직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한여름에 두꺼운 작업복과 방독면을 착용하고 일하는 공장 직원들을 봤는데, 식당을 홍보하려던 마음이 싹 가시더라고요. 이날 저분들이 짜장면 한 그릇을 먹더라도, 든든하고 건강한 한 끼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강한 짜장면을 만들기로 다짐했어요.”

    당시 이 대표는 중식당 두 곳을 운영하기에도 벅찼지만, 공장 직원들에게 건강한 짜장면을 제공해야겠다는 사명의식 하나로 면 개발에 들어갔다. 면에 배합할 식재료를 고민하던 그는 불현듯 톳을 떠올리게 됐다. 10년 넘게 섬에서 살았던 그에게 톳은 익숙한 재료였다. 곧바로 톳의 효능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고, 피로 회복에 좋은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무작정 톳으로 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생톳을 구매해 건조한 후 가루를 내어 밀가루와 배합해 봤지만, 점성이 약해 쉽게 바스러졌다. 가루의 비율과 물 비율을 조절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혼자 힘으로 한계를 느낀 이 대표는 요리사부터 시작해 한의사, 식품공학 전문가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에게서 얻은 정보와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1년 만에 톳면 개발에 성공했다.

    “톳 짜장면을 먹은 공장 직원들이 짜장면을 먹어도 허기지지 않고, 속이 편하다고 하고, 짜장면을 먹는데도 건강식을 먹는 것 같다는 등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톳면을 개발한 입장에서 너무 보람찼습니다.”

    이 대표가 자신이 수상한 상을 보여주며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대표가 자신이 수상한 상을 보여주며 미소를 짓고 있다.


    2014년 진해 어촌마을에 중식당 열어
    지역 지체장애인들 초대해 식사 대접
    매년 군항제 축제서 얻은 수익금 기부
    밝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 됐으면


    ◇천형의 섬을 치유의 섬으로 바꿨던 두 외국인에게서 얻은 봉사 정신= 한센병에 걸렸던 환자들의 집단 격리지였던 소록도. 누구도 이들을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196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푸른 눈의 두 외국인이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소록도를 찾았다. 1970년대 이 대표가 금당도에 살던 때 초등학교에서 소록도로 소풍을 갔었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두 외국인이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한센병이 전염병으로 알려져 한국인 의료진조차도 환자와 떨어져서 진찰을 했어요. 하지만 두 외국인 간호사는 맨손으로 환자들을 돌봤었죠. 그렇게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헌신한 두 분은 나이가 들어 짐이 되기 싫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아무런 보상 없이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이 대표는 두 명의 외국인이 보여줬던 헌신을 기억하며, 자신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2014년 이 대표는 진해구 용원동의 어촌마을에 지금의 톳면 중식당 ‘거가대교’를 열게 됐다. 당시 중식당 건물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창원시 진해지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곧바로 지체장애인들을 식당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더 큰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매년 진해군항제가 열릴 때면 축제 기간 부스를 빌려 요리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을 협회에 기부하고 있다. 그는 이외에도 톳으로 만든 음식과 정기 후원 등록을 통해 소록도의 두 외국인처럼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중이다.

    “40년이 넘도록 타국에서 헌신했던 외국인 간호사 두 분은 자신들이 한 일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요. 저 또한 제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약하지만 저의 도움이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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