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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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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4) 박영선 조각가

꿈을 깎는 공장… 산과 바다의 풍경마저 작업실이 되는 곳

  • 기사입력 : 2023-07-18 2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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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년간 서울 살다 고성 정착
    비어있던 참숯 공장 임대해
    선후배 함께하는 공간 꾸려

    산·바다 접한 자연 속 작업실
    반려견과 산책하며 영감 얻어
    홍수에 쓸려 온 돌로 작품 제작

    변화·개척도 ‘이주’의 영역
    작업실서 조각 통해 삶 위로
    돌 깎아내며 ‘비움’ 고찰도


    조각(彫刻)은 재료를 깎고, 새겨서 형상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박영선(62) 작가는 조각가로 지낸 40여 년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철학과 작품세계 또한 깎고, 덧붙이며 조각해 왔다. 특히 서울에서 고성으로 작업실을 옮긴 일은 그의 작품세계에 거대한 파편이 됐다. 그것은 이주(移住)였다. 공간의 이동과 새로운 여정이라는 의미까지 담은 ‘이주’는 2016년 박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에 처음 등장했다. 그러다 가장 최근인 올해 5월, 여섯 번째 개인전에는 아예 ‘이주’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성으로의 이주와 새로운 작업실이 그에게 무궁무진한 영감을 제공한 셈이다.

    산과 바다가 맞닿은 고성군 동해면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작업실에 맞닿은 녹음 진 산과 바다에 비치는 윤슬까지도 모든 것이 그의 ‘작업실’이다.

    박영선 조각가가 고성군 동해면 작업실에서 대리석으로 ‘이주자’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영선 조각가가 고성군 동해면 작업실에서 대리석으로 ‘이주자’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작업실은 끝없는 영감의 원천

    -고성으로는 언제 오게 됐나. 작업실에 다른 작가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마산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25년간 살았다. 지난 2014년 지인의 일을 함께 거들기 위해 고성으로 왔다가 계속 머물게 됐다. 이 장소는 예전에 참숯을 굽는 공장이었는데 6~7년은 비워뒀다고 한다. 이곳 주인이 고맙게도 무상으로 임대해줬다. 처음에는 앞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고 안쪽에는 쓰레기가 많아 6개월간 치우고 정리하는 데 전념한 것 같다.

    사실 조각 작업이 소음이 크고 분진이 많아, 야외가 조각가에게는 꿈의 작업실이다. 이 좋은 공간을 나만 사용하기엔 그렇다 싶어 공간이 부족한 선·후배도 이곳에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박 작가.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박 작가.

    -작업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산과 바다가 인접해 있어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영감이 샘솟는다. 다른 작가들도 그렇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반려견인 ‘김씨’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이때 ‘무심한 눈’으로 풍경을 바라본다. 다른 생각 없이, 부담 없이 거닐다 보면 자연에서 특별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걸어 다니면서 ‘이게 참 좋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돌아와서 스케치를 한다.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이 갖춰 있다는 것이 작업실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최근 열었던 개인전에서는 작품에 나무와 돌이 주로 사용됐는데 작업실 주변에서 얻은 것인가?

    △그렇다. 나무도 그렇고 특히 돌 같은 경우 지난 2016년에 고성에서 홍수로 쓸려 온 특이한 자연석을 사용했다. 산책을 하다가 바닷가 근처에서 구출했었다. 부서질 것 같으면서도 형태를 이루고 있는 돌인데, 이를 망치로 쳐서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끊임없는 변화와 시작, 그것은 삶의 ‘이주’

    -최근 개인전에서 ‘이주’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다는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처음 ‘이주’를 생각한 것은 지난 전시 작업 때였다. 사람은 나무를 옮기기 위해 뿌리를 뽑고 봉지를 감싸는 작업을 한다. 나무로서는 인간에 의해 뿌리째 뽑혀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이주’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5회 개인전에서는 봉지에 싸인 나무, 이런 형태를 그려봤다. 그런데 생각을 하다 보니, 모든 우주의 만물이 그런 식으로 이주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사람은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언제나 이주하며 산다. 공간적인 이주를 넘어 본질적으로 항상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성향까지도 이주의 반복이라고 바라봤다.

    박영선 조각가의 작품 ‘신 이주지’.
    박영선 조각가의 작품 ‘신 이주지’.

    -작가님 또한 다양한 의미에서 이주가 진행된 것 같다.

    △사실 서울에서 진행했던 전시와 고성으로 내려온 이후의 전시는 결이 다르긴 하다. 예전 작품은 작가 자신도 끊임없이 고뇌에 빠지게 만드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기계와 산업사회에 대한 고찰들, 천지인이니 하월문이니 하는 내용들이다. 당시에는 민중미술이 역동하던 시기라 작품에는 심오한 철학과 생각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각이란 것이 꼭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는, 나 자신과 우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특히 조각을 통해 내 삶을 위로받고 싶었다. 이번 개인전 작업을 하면서 그것을 느꼈다. 언제나 생각을 쥐어짜며 작업을 해왔는데 ‘조각이 이렇게 명쾌하고 신나는 것이 작업이구나’란 감정을 느끼게 됐다. 작업이 즐거워지니 사람들의 호응도 더 좋아진 것 같다.

    박영선 조각가의 작품 ‘이주’.
    박영선 조각가의 작품 ‘이주’.

    ◇비워나가는 것

    -작업실 바깥에 온통 돌이다. 작품을 위해 가져온 것인지?

    △그렇다. 이제껏 동판, 석고 등 온갖 다양한 소재를 다뤄왔는데, 앞으로는 돌을 깎아내는 작업을 이어가고자 한다. 젊을 때는 소조, 그러니까 깎는 것보다 붙여 나가는 작업을 많이 하려고 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깎아내는 작업에 집중이 된다. 깎는 것은 비워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을 조금씩 깎아가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고 오롯이 내가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볼 예정이다.

    앞으로도 돌을 깎아내는 작업을 계속할 건데, 사실 작업실에 모아둔 돌들이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다 쓸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이 든다. (웃음)

    박영선 조각가가 작업실에서 작품 구상을 하고 있다.
    박영선 조각가가 작업실에서 작품 구상을 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주제를 다룰 예정인지?

    △매 전시마다 다음 작품을 예고하는 티저(teaser)를 넣는다. 6번째 개인전에서 티저는 ‘팽이’였다. 인간의 ‘이주’를 깊이 생각하다 보니 그 끝 또한 보이게 됐다. 시간은 유한성을 가지기 때문에 탄생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소멸이 있다. 힘차게 돌던 팽이도 언젠가는 쓰러진다. 우리의 모든 것에 ‘소멸’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안락과 평온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박 조각가가 대리석이 쌓여 있는 작업실 마당에서 반려견 ‘김씨’와 앉아 있다.
    박 조각가가 대리석이 쌓여 있는 작업실 마당에서 반려견 ‘김씨’와 앉아 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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