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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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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친정엄마 같은 남편- 정성호 시조시인(2016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 기사입력 : 2023-07-13 19: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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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8남 1녀 중 여덟째 형님의 팔순 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다. 잔치는 전국과 미국 뉴저지에 사는 조카 가족까지, 오십 명이 넘는 가족이 모인 큰 행사였다.

    명절에 만나기 힘들었던 시집간 조카들과 누님 쪽 조카들 그리고 그 자녀들까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 소중한 자리였다. 더구나 코로나로 근 3년간 만나지 못했기에 모두가 더없이 반갑고 즐거웠다. 평소 여덟째 형님과 형수님께서는 늘 베풀고 본이 되시는 분들이기에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했다.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뜻에서 가족 문집 ‘한징기’도 출간했다. 크고 오래된 나무라는 대수(大樹)의 우리말로, ‘한징기’로 불리는 고향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 문집이다. 모든 가족이 쓴 팔순 축하 글, 91세 형수님의 시동생 팔순 축하부터 5세 된 내 손자가 그림과 함께 빼뚤빼뚤한 글씨로 쓴 축하까지, 가족 전 세대의 정성이 모여 탄생한 문집이다.

    그사이 많은 분이 돌아가시고 형제 3명과 며느리 3명만 남은, 한 세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고향과 가족의 기억을 기록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각각 흩어져 살다 보니 이제 젊은 후손들은 서로의 얼굴도 잘 모른다. 나는 가족의 뿌리였던 ‘한징기’를 새로운 세대들과도 함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문집을 만드는 작업을 조카와 함께 서둘렀다.

    경남 함양 ‘한징기’ 마을의 유래도, 가야 시대까지 찾아 올라가 문헌과 유적에 담긴 고향의 역사, 옛 집안 어른들의 발자취, 형제간 우애로 명문가가 된 이야기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개인의 추억담과 옛 사진들을 한데 모았다. 많이 간추렸는데도 256쪽의 꽤 두툼한 책이 되었다. 책을 읽은 젊은 핏줄들은 자기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또 뿌듯한 것은 일곱째 형님이 생전에 기고했던 시와 칼럼 등 여러 작품을 모아 유고집 형식으로 우리 후손들이 읽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문학지, 신문, 문인 협회, 신문사, 도서관, 인터넷 카페까지 샅샅이 찾아준 분들의 도움과 수고 덕분이다.

    팔순 행사 중 제일 기쁘고도 숙연했던 말은 “남편이 친정엄마같이 편하게 해줘요”라는 형수님의 덕담이었다. 오래 산 부부 사이엔 서로의 흉허물 때문에 상대를 높이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진심이 담긴 말씀에 다들 감동하였다.

    형수님은 암이 13년 만에 재발하여 힘든 상황에서도 암도 주신 은혜라며, 그 가운데서도 늘 이웃, 가족들을 돕고 축복하시는 본인도 주변에 친정엄마 같은 분이다. 형수님이 15년 전 투병하며 쓴 유언장과 간증문과 기도지침서를 문집에 실었는데 읽으면서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한 편의 소설인 듯하다. 내 뿌리가 된 가족들의 인생길과 그 길을 어떤 과정으로 지나왔는지 기억하는 건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며, 형님과 형수님의 안녕을 간절히 빌었다.

    정성호 시조시인(2016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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