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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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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86) 미우주무(未雨綢繆)

- 비가 내리기 전에 집을 수리하라

  • 기사입력 : 2023-07-04 08: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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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올해는 간지로 계묘년(癸卯年)이다. 계묘년에는 매번 비가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1963년 계묘년에는 필자가 12살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때 비가 너무나도 많이 내린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음력 4월 15일에 우리 조모님 회갑잔치를 했는데, 그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음력 8월 15일 추석 때까지 빗방울 떨어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어른들이 말했다. 그해 음력 4월 15일은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8일이었다. 그때까지 보리가 잘 되었는데, 계속 비가 오니 적고병(赤枯病)이라는 붉은 곰팡이가 피어 보리알이 가루가 되어 없어졌다.

    6월 19일 상륙한 태풍 셜리 때는, 하루 강수량이 200㎜를 넘었다. 앞에 내린 빗물이 빠져나가기도 전에 또 비가 내리니, 고일 만한 곳은 다 침수가 되었다.

    필자가 소 먹이러 간 산에서 내려다본 함안군 법수면(法守面) 사평(沙坪) 마을 앞에 제방을 쌓아 만든 제법 너른 들판이 있었다. 보통 때는 비가 많이 오면 논이 물에 잠길 정도였다. 6월 20일경에 논이 잠겼다. 며칠 뒤에는 그 배수장이 잠겨 버렸다. 그 며칠 뒤에는 둑 자체까지도 다 잠겨 버렸다. 둑이 안 보이는 상태가 보름 이상 지속된 것 같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제방이 잠기거나 터져 사방이 바다 같았다. 함안 건너편 남강 북쪽의 의령둑이 터졌다. 창녕의 남지둑도 터졌다. 아주 큰 둑인데 터졌으니, 농경지 침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함안군 군청 소재지도 침수되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쌓은 함안의 악양(岳陽) 둑만은 안 터지고 버텨내었다.

    1963년까지만 해도 일기예보를 들을 수가 없었고, 정보통신도 없으니 다른 지역의 홍수피해 소식도 소문으로 전해 들을 뿐이었다.

    요즈음은 기상예보가 정확하고, 각종 방송이나 정보망을 통해서 수시로 점검하여 대비할 수 있다. 기상예보가 아주 정확하고 또 아주 장기간까지 예측하기 때문에 홍수의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또 강이나 하천을 잘 정비하고, 수로를 개선하고, 댐을 많이 만들어 홍수의 피해가 옛날에 비하면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수해가 해마다 발생한다. 미리 대비하지 않아서 그렇다. 일기예보를 통해 사전에 정확한 기상정보를 얻어 철저히 대비해야 하겠다.

    ‘시경(詩經)’에 “하늘이 흐려져 비가 내리기 전에, 저 뽕나무 뿌리껍질을 벗겨, 둥지를 잘 싸매라.(殆天之未陰雨(태천지미음우) 徹彼桑土(철피상토) 綢繆戶유(주무호유))”라는 구절이 있다. 새의 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구절이다. 어찌 홍수 대비만 그렇겠는가? 모든 일은 미리 대비하면 손쉽고 효과도 크다. ‘중용(中庸)’에도 “무릇 일이라는 것은 미리 하면 성공하고, 미리 하지 않으면 망친다(凡事豫則立(범사예즉립), 不豫則廢(불예즉폐))”라는 구절이 있는데, 같은 뜻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도 그런 뜻이다.

    * 未 : 아직 아닐 미. * 雨 : 비 우, 비내릴 우. * 綢: 명주 주, 얽어맬 주.

    * 繆 : 얽을 무.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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