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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1년 365일 국화 가꾸는 심춘석 창원농업기술센터 주무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소쩍새가 된다

  • 기사입력 : 2023-06-28 21: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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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앞부분이다. 국화를 주제로 한 시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이 시를 꼽을 게다. 시제처럼 1년 365일 국화 옆에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창원시 농업기술센터 도시농업과 심춘석(51) 주무관이다.

    지난 20일 오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묘촌리에 자리한 창원농업기술센터 양묘장. 창원시의 3대 축제 중 하나인 마산국화축제에 전시되는 국화 재배지다. 다양한 테마의 모형 틀에 맞춰 국화 줄기를 수작업으로 심는 이른바 유인 작업이 한창이다.

    창원시 농업기술센터 심춘석 주무관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에 위치한 농업기술센터 양묘장에서 국화축제에 사용할 유인 작업이 끝난 모형작 구조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농업기술센터 심춘석 주무관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에 위치한 농업기술센터 양묘장에서 국화축제에 사용할 유인 작업이 끝난 모형작 구조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성승건 기자/

    “국화를 재배하는 과정을 보신 분들은 다들 말씀합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많은 노력으로 준비하는 줄 몰랐다라고.” 18년째 국화 축제 꽃을 관리하고 있는 심춘석 주무관의 말이다.

    마산국화축제의 준비 기간은 1년 이상이다. 축제를 마치면 튼튼한 모주를 확보해 월동을 하고, 새로운 순이 올라오면 꺾꽂이로 증식을 해 국화 품종별, 작품별로 육묘를 한다. 축제 콘셉트에 맞춰 모형작 구조물을 제작하면서 오래된 작품 구조물도 수리한다. 이후 육묘된 국화 모종을 작품 구조물에 심는 유인 작업과 꽃이 많이 피도록 적심 작업을 반복해 축제에 전시될 작품을 만들어 낸다.

    “국화는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매일 물과 양분을 필요로 하며 생장합니다. 때문에 개장하는 날까지 계속 유인 작업을 해야 깔끔한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축제가 끝나면 다시 모종을 확보하고 다음 국화축제 준비 들어갑니다.” 축제가 끝나더라도 끝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2005년 임용… 18년째 국화 축제 등 꽃 관리
    2013년부터 국화작품 생산·전시연출 도맡아
    다양한 테마의 모형 틀에 국화 줄기 수작업


    ◇지독히도 싫었던 농사일

    심 주무관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편찮으신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이사오면서 처음 농사를 접했다. 소싯적 얘기를 묻자 그는 농사쪽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과일을 먹은 뒤 씨앗을 뿌려 놓고 자라는 걸 재미있게 보고, 행복을 느꼈던 것 같아요.”

    농사일은 재미있었지만 장래 희망은 아니었다. 힘만 들고, 벌이는 시원찮은 데다 대우 받지 못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운명인지, 고교 입학 시험을 앞두고 복막염 수술을 받으면서 인문계 시험을 볼 수 없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농업고교에 진학한 그는 정식으로 농업에 입문해 비료가 무엇인지, 삽목이 무엇인지 등을 배웠다. 군 제대 후 농업과 관련 없는 다른 일들을 했지만, 큰 흥미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옷 몇 가지를 챙긴 가방 하나를 메고 마산에 온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마산에는 아무 연고도 없었는데, 당시 시설원예 관련 일을 하는 농업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 후 시설재배 시공현장 책임자로 일하다가 마산시 농업직 공무원으로 임용되면서 원예 관련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국화와의 만남

    2005년 공무원에 임용된 그의 첫 업무는 국화축제와 시가지 꽃 관리였다. 당시 마산가고파국화축제가 인기를 얻으면서 업무 비중이 커지기 시작해 전임자인 고(故) 전정수 주무관과 함께 축제 일에 가담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전임자의 사망으로 2013년부터 국화작품 생산과 전시연출을 전적으로 도맡았다. 혼자서 국화축제를 오롯이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컸다. 당시 실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직원이 없었고, 그 역시 전임자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혼자서 축제를 감당할 수 있겠냐며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불안한 분위기를 추슬러 일을 해야 했지요. 축제 준비를 끝내고, 처음 입장한 관람객들의 입에서 칭찬의 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고 울컥했습니다. 해냈구나 하는 안도감과 그동안 짓눌렀던 부담감이 교차하면서 가슴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걸 느꼈습니다.”


    종자·식물보호·시설원예 기사 등 자격증 따
    색다른 축제 만들기 위해 새 작품 구상 몰두
    마산국화축제 다륜대작 ‘천향여심’에도 참여


    ◇국화 생장 방해될까 담배도 끊어

    심 주무관은 초창기 원인 모를 병해충과 생리장해로 국화가 자주 시들고, 잘 자라지 않는 현상을 겪었다. 온도와 습도, 영양 등의 환경 조건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이유를 몰라 혹여 전임자에게 물어보니 흡연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흡연한 손으로 국화를 만졌을 때 각종 바이러스 등 생리장해가 발생하고, 진딧물 같은 해충도 담배 연기로 유입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흡연한 손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아이 셋 낳고 기르는 동안에 끊지 않던 담배를 국화 때문에 끊었습니다. 당시 국화는 제 밥줄이었고,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인정받고 싶었던 시기였지요.”

    보다 전문적인 화훼 지식과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그는 꾸준히 노력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종자 기사 자격증을 비롯해 식물보호 기사, 유기농업 기사 자격증을 땄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효율적인 육묘 관리를 위한 시설원예 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지금도 심 주무관은 동종 업종의 최고 유능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심춘석 창원농업기술센터 주무관
    심춘석 창원농업기술센터 주무관

    ◇식상하다는 소리 들을까 매년 축제 고심

    그는 국화 축제와 전시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기, 다륜대작 작업에 참여했다. 다륜대작은 ‘천향여심(天香旅心)’이라는 품종으로 국화 가지를 둥근 형태로 사방으로 퍼뜨려 만든 대형 작품이다. 마산국화축제만의 차별성과 국화 시배지로서, 마산만의 재배 기술력을 널리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2007년 축제 때 첫선을 보인 뒤 2009년에는 1315송이의 만개(滿開)로 세계 기네스에 등재됐다. 매년 개화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다륜대작 ‘천향여심’은 마산국화축제의 상징이다. 이런 상징 속에 부담감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매년 반복되는 축제에, 다른 지역에서도 국화 축제를 개최하면서 콘텐츠가 식상하다거나 차별성이 없다는 말을 들을까 봐, 늘 색다르면서도 전년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축제 마무리 기간은 각종 병해충이 만연하는 장마철과 혹서기입니다. 태풍 또한 자주 올라오죠. 축제 시기까지 국화를 잘 관리하면서도 어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지 계속 연구해야 합니다.”


    국화는 동료이자 질투심 많은 애인 같은 존재
    후임자들 위해 재배 관련지침서 만들고 싶어
    농업 재해환경 개선하는 기술자도 인생 목표


    ◇오래된 동료·애인 같은 국화

    그에게 국화는 오랜 동료이자 질투심 많은 애인과도 같은 존재다. 늘 옆자리를 지켜주면서도 애를 태우는 까닭에서다.

    “국화는 평소 소중함을 모르다 무슨 문제가 발생되고 나야 깨닫는 그런 존재 같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대신,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바로 토라져 애를 태우기도 하죠.”

    지난겨울 사무실 근무로 장기간 돌보지 못하던 때 국화들이 많이 병들어 힘들었다는 그는 국화 재배 관련 지식을 더 쌓아 후임자들을 위한 지침서를 만들고 싶은 게 작은 바람이다. 여기에 더해 국화에 국한되지 않고 농업 재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자도 인생 목표 중 하나다.

    “아직 국화나 식물 재배에 대해 많이 부족합니다. 좀 더 공부해 후임자나 신규 작업자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지침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농민들의 불필요한 지출과 노력을 줄여 줄 수 있는 농업 관련 기술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 아래로 검게 그을린 얼굴이 영락없는 촌부 같은, 심춘석 주무관이 작지만 야무진 꿈을 꽃피우고 있다.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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