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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나의 지점에서- 서성자 시조시인(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 기사입력 : 2023-06-22 19: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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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존재를 과거형으로 표현할 때 그 말은 슬프다. 상황에 관계없이 그 자체엔 물기가 배어 있다. 죽었다, 떠났다, 헤어졌다 등 누구나 과거로서 그 존재자가 된다. 구체적인 이별은 살아 있는 날까지 반복될 것이고, 고통도 제 의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잘 존재하기 위해 그 안에서 자신의 지점을 찾아 다듬는 일은 중요하다.

    일상 하나를 접었다. 집 주변엔 밭과 들이 가까워 길고양이들이 많다. 봄이면 새끼들이 태어나 개체가 늘어난다. 그로 겪는 이웃과의 갈등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최대한 문제를 줄이려고 길고양이 중성화사업에 신청해 수술도 시키고 입양도 보내면서 몇 년을 마음 졸였다.

    그런데 참 오묘했다. 생태계는 인간이 간섭하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개체를 조절하며 이어지는 것이었다. 가끔 봄 감기가 돌림병처럼 오면 새끼들은 거의 전멸 수준으로 사라진다. 또 가을에 태어난 새끼들은 겨울을 못 넘기고 대부분 죽는다. 누가 돌보든 그렇지 않든 그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한 건가’ 약속한 듯 텅 빈 골목엔 자주 무력한 봄이 가득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길고양이 돌봄은 미흡했으나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 버려진 새끼를 임시보호하면서 포유류만이 느낄 수 있는 체온의 온순함이 참 귀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사람의 여러 지점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법도 좀 알았다. 상실의 대상이 연약할 때 오는 우울도 차분히 받아들였다. 모두 지나가고 사라진다. 생명의 한 지점에서 웃기도 울기도 한 체험은 내 일상에서 어떤 징후를 만들고 형이상학적인 삶에 약간의 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사람과의 이별은 좀 씁쓸할 때도 있다. 차단 손절의 형식이다. 디지털 시대 편한 맺음의 한 방식이라지만 절차를 무시하고 끝낸 인연은 깊이는 달라도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이때 서로 마음의 온도는 극과 극일 수 있다. 이런 감정은 세상을 보는 방식과 느낌의 지점이 다를 때 일어난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반응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생각에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각자의 지점은 외롭고 괴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자신의 지점을 안다는 것은 밝은 곳을 향한 치유의 과정을 동반하기에 어떤 입장이든 지나친 자책은 금물이다. 사는 동안 수십 개의 자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슬픔과 기쁨으로 와서 시작하고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며 성숙해지는 게 인간이다.

    삶은 만남, 기다림, 이별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공통의 사랑을 찾아야 한다. 여러 갈래의 지점이 서로 교차하는 곳,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은 곳, 바로 인간의 지점에서 말이다. 그곳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 삶은 아름답다 할 수 있다. 한 존재의 시간이 사라진 길가에 줄장미가 붉다. 다시 시작될까? 사물을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는 일… 나의 작은 일상이 여름을 건너고 있다.

    서성자 시조시인(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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