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마술사의 달- 이주언
- 기사입력 : 2023-05-04 0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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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를 쓰고 복화술사처럼
눈빛으로 말을 한다 검은 옷깃 매만진다
자 여러분, 이제 마술의 세계로!
손바닥 위에 하얀 구(球)를 얹고 빙그르 돌린다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달이 떠오른다
하얗게 여울지는 물결들
찰방, 달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리움의 분화구 한 장씩 끄집어낸다
아버지의 금 간 술잔 공중에 던져두고
양수처럼 쏟아졌던 사랑은 붉은 천으로 너울거리고
순진했던 엄마, 달빛 입자로 흘러내린다
사라져버린 것들 환하게 불려나오자
내 몸이 궤도를 따라 돈다
분화구 한 장으로 접히는 내 몸의 꽃송이
가시 끝에 물방울 맺힌다
흰 손바닥이 그리움의 가시 쓸어내린다
깊은 이별은 믿고 싶지 않아
선 채로, 쏟아지는 달빛 쇠사슬에 감기다 달빛 너울에 감기다
빙그르 돌며 천,천,히 달빛에서 풀려난다
☞ 마술사는 늘 신비롭습니다. “복화술사처럼/ 눈빛으로 말을 한다” 사람들은 그 마술사의 눈빛에 “선 채로, 쏟아지는 달빛 쇠사슬에 감기다 달빛 너울에 감”깁니다. “내 몸이 궤도를 따라” 돕니다. 마술사의 달은 더 신비롭습니다.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달이 떠오”릅니다. 그 달 속에 마술사는 “그리움의 분화구 한 장씩 끄집어” 냅니다. 만국기처럼 줄줄이 달려 나오는 그리움들 “사라져버린 것들 환하게 불려나”옵니다.
5월입니다. 엄마가 불려나오고 아버지가 불려 나옵니다. “사라져버린 것들 환하게 불려나오자/ 내 몸이 궤도를 따라” 돕니다. “분화구 한 장으로 접히는 내 몸의 꽃송이/ 가시 끝에 물방울 맺”힙니다. 벌써 오월입니다. 아니 아직 오월입니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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