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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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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봄날의 심장- 마종기

  • 기사입력 : 2023-04-27 08: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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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해였지?

    갑자기 여러 개의 봄이 한꺼번에 찾아와

    정신 나간 나무들 어쩔 줄 몰라 기절하고

    평생 숨겨온 비밀까지 모조리 털어내어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과 라일락,

    서둘러 피어나는 소리에 동네가 들썩이고

    지나가던 바람까지 돌아보며 웃던 날,

    그런 계절에는 죽고 사는 소식조차

    한 송이 지는 꽃같이 가볍고 어리석구나.


    그래도 오너라. 속상하게 지나간 날들아,

    어리석고 투명한 저녁이 비에 젖는다.

    이런 날에는 서로 따뜻하게 비벼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눈이 떠지고 피가 다시 돈다.

    제발 꽃이 잠든 저녁처럼 침착하여라.

    우리의 생은 어차피 변형된 기적의 연속들.

    어느 해였지?

    준비 없이 떠나는 숨 가쁜 봄날처럼.


    ☞ 사월의 꽃 잔치도 봄 한 철이듯 인생의 전반도 마찬가지, 피었다 지고 마는 한 철입니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며 주어진 하루하루가 기적의 연속이라 하겠습니다. 봄이 봄인 까닭이 궁금해 그 어원을 살펴봅니다. 불(火)+올(來)에서 찾기도 하지만 약동하는 자연을 눈으로 본다(見)라는 관점에서 보면 되겠습니다.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4계절 중 오직 봄만 ‘새봄’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산수유 피고 지고 벚꽃 휘날릴 때쯤, 어르신뿐만 아니라 불현듯 황망한 죽음으로 일찍 세상을 등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홀연히 남겨진 사람끼리 아픈 심장을 비빌 때 위로라도 하듯 천지가 초록빛 눈물을 쏟아주곤 합니다. 이제는 ‘꽃을 보러 간다’는 말 대신, ‘꽃의 말을 들으러 간다’고 해야겠습니다. ‘당신도 할 말이 수두룩하지요?’ 사월의 꽃 잔치, 몇 번이나 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숨 가쁘게 삽니다. 흐르는 봄날처럼 말입니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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