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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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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택배- 이처기

  • 기사입력 : 2023-04-20 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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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꽁꽁 동여맨 매듭을 풀어 가면

    가로와 세로로 질러 묶은 마디마디로

    손금이 축축한 채로 슬슬 배어 나온다


    틈새로 애잔히 깔린 잔잔한 당부가

    서투른 글씨를 업고 언뜻언뜻 들리는데

    나았던 지난 흉터가 갑자기 간지럽다


    접었다가 폈다가 함부로 버리지 못한

    어젯밤 꿈 모서리에 뒹굴기만 한 비닐봉지

    남녘 창 열어보아도

    새벽별은 아직 멀다



    ☞ 인터넷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우편물이나 상품을 집까지 배달해 주는 택배는 매우 중요한 서비스 중 하나가 되었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배달되는 상자에는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꽁꽁 동여맨 매듭을 풀어 가면’ 가로세로 질러 묶은 ‘틈새로 애잔히 깔린 잔잔한 당부가 /서투른 글씨를 업고 언뜻언뜻 들리는데’ 그것은 바닷가 생물을 손질해서 객지에 근무하는 아들에게 보낸 어머니의 택배 상자였을까.

    선잠에서 깨고 보니 문득 설렘으로 받았던 택배 상자가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생전에 남해를 지키며 정성 가득한 마른 생선이며 밑반찬들을 보내주셨던 어머니의 손금이 배인 ‘어젯밤 꿈 모서리에 뒹굴기만 한 비닐봉지’처럼 허투루 버릴 수 없었던 손길이 그립다.

    새벽별은 가장 밤이 깊을 때 밤이 영원한 것처럼 어둡지만 곧 아침이 온다는 걸 알리는 별이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새벽녘은 침묵을 마주하며 어둠과 고독을 견뎌내는 시인의 공간이다. -옥영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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