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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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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1) 장건율 화가

햇빛, 만화, 사진, 로망을 채웠다
작년 1월 햇빛 드는 첫 개인 작업실 마련
만화책·카메라 등 좋아하는 물건 채워 작업실 로망 실현

  • 기사입력 : 2023-04-11 21: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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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실은 작품이 탄생하는 우주적 공간이다. 가치관과 취향이 오롯이 담겨있어 한 예술가를 설명하는 또다른 형태의 작품과도 같다. 작업실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업실 탐방을 시작한다. 예술가들 각자가 쌓아올린 세계 속에서 유영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이 탐방기를 쓴다.

    장건율(31) 화가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도심 속 자연을 캔버스에 옮긴다. 버드나무와 목련, 튤립까지 그가 자주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물 속 도형적 요소가 화폭에 남는다. 색을 섞지 않은 순색으로 그려 강렬한 색감을 지닌 작품들이다. 이면지에 그린 손바닥만한 드로잉부터 그 드로잉으로부터 확장된 유화 작품들을 현재 서울 갤러리 이든에서 전시하고 있다. 전시에 내놓은 작품들을 그려낸 곳은 창원 봉림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다. 이번이 다섯 번째 작업실이지만 처음으로 갖게 된 개인 작업실이라 의미가 남다른 곳이라 했다.

    장건율 화가가 창원시 봉림동의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버드나무 작품 앞에서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장건율 화가가 창원시 봉림동의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버드나무 작품 앞에서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햇빛 드는 첫 개인 작업실

    -이 작업실은 어떻게 들어왔나

    △개인작업실을 구하려 알아보던 중에 당근마켓에 올라온 집 근처 상가 점포를 봤는데 마음에 들어 지난해 1월 들어왔다. 코로나19 여파로 비워져 있는 곳이 많아 임대료도 나쁘지 않았다. 열심히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적합한 공간이 나타났던 사례를 몇 번 경험해보니 공간이란 건 운명처럼 오는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는지

    △이때까지 작업실을 다른 작가들과 같이 썼고, 지하 공간이었기에 혼자 쓸 수 있는 곳, 햇빛을 쬘 수 있는 곳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임대료가 조금 더 비싸지고, 작업공간이 좁아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정말로 좋아하는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작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만의 공간과, 햇빛이라는 결핍됐던 부분들이 사실은 제게 가장 중요했던 부분들이었던 걸 깨달았다. 이 곳은 건물 모서리 점포여서 두면이 창문이다. 햇빛이 더 많이 들어 마음에 든다. 집과 가까운 것도 장점이다. 집밥을 먹을 수 있고 교통비, 시간도 절약된다. 작업실이 안온해 ‘가고 싶은 곳’이 되니 작업량도 훨씬 늘었다. 저는 어떤 것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하는 일이 작업이기에 안온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잘 꾸미고 싶었겠다

    △작업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선배 작가들의 작업실에 가면 공간만 봐도 작가의 삶과 작업이 드러나고 재현이 된다는 느낌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공동으로 쓰다보니 지금까지 제 작업실에서는 발산을 못했고 언젠가 개인작업실이 생기면 두고 싶은 물건들을 모아오기만 했는데 이제야 한 곳에 둘 수 있게 됐다. 첫 개인 작업실인 만큼 눈에 닿는 것, 전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놓고 싶었다. 그 안에서 제 작업이 제일 잘 될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의 루틴은?

    △점심을 먹고 작업실에 오는 편이다.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보통 오후 6시까지 작업한다. 유화 특성상 한 번에 해내야 할 작업 분량이 있어 필요할 경우 오후 8시까지 정도 할 때도 있지만 그 이상 넘기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이 때 마쳐야 자전거를 탈 시간이 생긴다.

    ◇화가 ‘장건율’의 취향 모음집

    -벽에 걸린 티셔츠가 궁금하다

    △일본 유명 만화 H2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크로스게임’을 그린 ‘아다치 미츠루’를 매우 좋아한다. 일본 유니클로에서만 발매한 이 작가 만화 빈티지 티셔츠를 샀는데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인 데다 이 자체로 예뻐서 액자에 넣어 걸어뒀다. 중학생 때부터 만화가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고, 만화학원에서 일도 오래해서 언젠가는 꼭 만화책 한 권을 펴내고 싶다.

    -벽선반에 화집들이 눈에 띈다. LP도 보이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도록과 만화책, 시각, 이론자료들이다. LP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닌데 LP판 디자인과 정방향의 이미지가 좋아서 모으기 시작했다. 정방에 관심이 많아 필름 작업할 때도 중형카메라로 정방 사진을 찍었고, 작업 또한 정방형이 많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있는데, 사진 작업도 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파면 끝장을 봐야 끝내는 것 같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는데, 중고 카메라를 여러 대 사고, 대학교에서 폐기물로 처리할 암실 물품들을 가져와 직접 인화를 해보기도 할 정도로 흥미를 가졌다. 최근에는 화학물질을 처리하는 일이 쉽지 않아 대부분 처분했다. 폴라로이드로는 가끔 작업실과 셀카를 찍어 기록해 두는 용도로 쓴다.

    장건율 화가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한 셀프 포트레이트와 다양한 카메라 장비들이 카메라 제습기에 보관되어 있다.
    장건율 화가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한 셀프 포트레이트와 다양한 카메라 장비들이 카메라 제습기에 보관되어 있다.

    ◇작업 중인 작품과 재료들

    -색이 쏟아질 듯한 버드나무가 인상적이다

    △창원천 옆 버드나무를 그리고 있다. 지난해 내내 마산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그 버드나무에 까치가 앉아있는 풍경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주기적으로 그 버드나무를 찾아 드로잉을 했고, 그걸로 나온 작업들이 지금 보이는 것들이다. 5월 초 열리는 아트 부산 전시에 출품할 예정이다.

    -재료와 도구는 주로 어떤 걸 쓰나.

    △유화를 주로 사용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오일바’를 함께 쓰고 있다. 물감을 붓에 묻혀 쓰면 길게 선을 그리지 못하는데 오일바는 선의 운동성을 길게 유지할 수 있어 긴 선을 그리기에 적합하다. 아크릴은 요새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때때로 색을 터뜨리듯이 한 번 쓰고 싶을 때 사용한다.

    물감대는 물감이 늘면서 더 넓고 낮은 작업대가 필요해 벽에 붙은 선반을 반으로 자르고 바퀴를 달아 직접 만들었다. 작업은 주로 벽면에 캔버스를 걸고 했는데 최근 빈티지 가구점에서 드로잉 테이블을 하나 구매했다. ‘프리스 크라머’라는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으로 각도를 조절해 드로잉 테이블로도, 책상으로도 쓸 수 있다.

    -이면지 수거함에서 이번 전시 작품이 연상된다.

    △학부시절 내내 학내근로를 했는데 그 때부터 이면지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이면지를 모아 공책을 제작했고, 오래도록 그 일을 이어오고 있다. 이면지에 드로잉을 자주 하는데 전용 펀치로 편하게 마음에 드는 그림들은 엮어둘 수도 있어 좋다. 재활용한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이면지가 주는 자유로움이 좋다. 작업할 때도 마음에 드는 이면지 드로잉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에도 이면지에 그린 그림을 선보였다.

    이면지에 작업한 드로잉 작품.
    이면지에 작업한 드로잉 작품.

    ◇자전거 캠핑으로 만날 더 큰 자연

    -자전거가 세 대에다 공구도 많다

    △지난해에 자전거 정비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자전거를 매일 타고 공부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경남 곳곳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준비가 다 끝나서 곧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자전거를 사고 팔면서 맞는 자전거를 고르고,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는 장비와 실력을 갖췄다. 매일 30km 이상 타며 체력을 기르고 노지 캠핑을 할 수 있는 훈련도 병행했다. 고생을 선호하지 않아 시행착오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장건율 화가가 작업 중인 버드나무 작품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장건율 화가가 작업 중인 버드나무 작품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언제부터 생각해오던 건가

    △꽤 오래됐다. 스무살 때 용지호수에서 무료로 초상화를 그려드리는 걸 해본 적이 있는데, 고맙다며 과자나 음료수를 주셨다.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기술로 여행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2017년에 한 자전거 브랜드 공모전에 접이식 자전거를 들고 기차를 타고 다니며 초상화를 그려주는 전국여행을 출품한 적 있다. 공모에선 떨어졌지만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때부터 초상화 그리기를 단련했고 2,3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전거 캠핑을 준비했다.

    -어떤 작업물을 기대하나

    △처음엔 초상화를 그리며 다니려 했지만 지금은 보다 큰 자연을 보는 것이 제게 매우 중요한 일일 것 같다. 작업의 소재들이 도심 안에서 조경의 결과로 볼 수 있는 튤립, 목련, 철쭉 등이 중심이어서 작고 동그랗고 귀여운 이미지가 주였다. 더 큰 자연을 본다면 제 작업이 확장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드넓은 자연에서 드로잉을 최대한 많이 쌓아서 작업실에 돌아와 캔버스로 옮기는 것이 올해 주 작업이 될 것이다. 제게 잘 맞는 작업이라면 11월에 예정된 개인전 때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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