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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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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일어서게 하는 힘- 임성구(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 기사입력 : 2023-02-09 19: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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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말이죠. 세상에 나오면서 엄마를 잃어버렸죠. 밤이고 낮이고 엄마를 찾아다니며 그리워했죠. 또래 아이들이 아주 행복하게 뛰어놀거나 해 질 무렵 엄마들이 “호찬아! 말숙아! 끝순아! 밥 묵거로(먹으러) 퍼뜩 들어 온나.”라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부르면 아이들은 하나둘씩 제집으로 쏜살같이 사라졌죠. 어둑어둑한 골목 어귀를 배회할 때 예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먹구야! 밥 먹거로 온나.”라고 부르면 괜한 돌부리만 툭툭 차며 집에 들어가기 싫다며 속을 이만저만 썩인 게 아니었다죠. 마지못해 집에 들어가서는 날마다 먹는 띠포리(디포리)국밥 앞에서 온갖 투정 다 부렸다죠.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아이였죠.

    그러던 그 아버지 칠순 무렵, 그 아이 열 살 무렵, 아버지가 병이 들어 고사리손을 그만 놓아 버렸죠. 눈보라가 치던 섣달그믐 열엿새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버린 한밤중에 아이를 꼬옥 끌어안고 당신은 천천히 식어갔죠. 청천벽력도 이런 청천벽력이 또 있었을까요. 지독하게 철딱서니 없고 불효막심하던 아이가 대성통곡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저도 함께 묻어 달라고 떼를 썼다죠. 펑!펑!펑! 눈물 콧물도 다 얼어붙은 그 한겨울의 무덤가에서….

    그 친구에게 물었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고…. 이젠 피식 웃으면서 스스럼없이 말하데요. 그동안 극단의 시간 세 번과 병고의 시간을 건너는 동안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봤답니다. 죽으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병을 앓았을 때 비로소 삶이 더 절실해지더란 겁니다.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이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고통스러운 가운데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부모가)이 지상에 생명을 내려 줄 때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 풍파를 잘 견뎌내며 호탕하게 기쁨도 한번 누려보라는 것일 것입니다. 힘들어서 우울한 사람에게 주문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우여곡절 속에 변화무상하므로 상황을 잘 직시하며 굳건하게 살 일이라고…. 그리고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진짜 잘 살 일이라고….

    임성구(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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