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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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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느린 독서, 깊게 생각하라- 박혜정(한국독서문화경영연구소)

  • 기사입력 : 2023-02-08 19: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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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진화 중 손꼽히는 사건을 들자면 단연 이족보행이 아닐까. 네 발이 두 발이 되며 인간의 두 손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도구 사용, 두뇌 성장, 언어 발달, 생산력 증대 등 두 손의 자유로 인류는 많은 혜택을 얻었다. 그중 지금의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이로움이라면 책 읽는 행위로 이어지는 절대 자유가 아닐까 싶다.

    책은 들여다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반추하는 심연의 거울이 된다. 책으로 나를 보고 세상이라는 확대경으로 나를 투영하기 위해 글이 삶으로 다시 쓰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지식이 쌓인다는 느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등에 만족하곤 한다. 이는 해석하고 해독하는 능력을 잃게 하고, 단어와 텍스트에 순종하게 한다. 양적 독서에 중독되는 길이다. 이것은 글 위에서 네 발로 걷는 인간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자유로운 두 손을 위해 이족보행을 하듯, 글 속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단어와 문장이 가진 의미를 깊이 관찰하고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 읽는 사람을 통해 재해석되는 문자를 투영해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결심하기 좋은 1월, 해가 바뀐 것을 계기로 강제적 느린 독서를 선택했다. 슬로리딩 독서모임으로 시작한 〈태백산맥〉 다시 읽기. 과거 내가 알던 책이 아니다. 민족의 아픔인 줄 알았던 〈태백산맥〉은 현재진행형의 내 이야기이다. 느린 독서로 1권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그 어떤 책보다 농밀하다. 20주간 다시 읽을 〈태백산맥〉이 펼칠 또 하나의 세상은 소풍 전날의 어린아이처럼 나를 들뜨게 한다.

    누군가에 기대어 온 삶은 누군가에 의해 뿌리 뽑히고 만다. 책에 기댄 내 삶은 언제나 불안했다. 책에 순종하며 두 발로 서지 못했던 나는 뿌리 없이 핀 꽃이었다. 불안 대신 불편을 선택했다.

    누군가에게 기댄 독서가 아닌, 느려도 스스로 읽고 소화 시킬 때 비로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읽고 또 읽으며, 깊이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혜정(한국독서문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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