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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붕어빵-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2-12-15 19: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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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리는 순간조차 행복하다. 노란 양은주전자에서 우윳빛 반죽이 쏟아지면 입안엔 벌써 침이 고인다. 빵틀 안에서 반죽과 앙금이 서로를 뜨겁게 껴안는 사이, 빵틀은 닫히고 뒤집히고 열리며 경쾌하게 춤춘다. 달큰한 냄새, 따끈한 감촉, 노릇한 색깔, 바삭한 식감. 바람에 펄럭이는 작은 천막 안은 오감의 축제장이 된다. 붕어빵 노점에선 그렇게 ‘맛있는 겨울’이 익어간다.

    ▼붕어빵의 역사는 100년에 가깝다. 193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의 ‘도미빵(다이야키)’이 시초다. 밀가루가 주재료인 붕어빵은 1950~1960년대 미국 곡물 원조를 계기로 널리 퍼졌다. 가격도 저렴해 가난한 사람들의 끼니가 됐다. 서서히 자취를 감추던 붕어빵이 다시 등장한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리어카를 끌고 붕어빵 장사에 뛰어들었다. 붕어빵집은 한때 ‘불황 지표’였다.

    ▼제철 맞은 붕어빵이 요즘 멸종 위기에 놓였다. 흔하던 길거리 노점이 귀해졌다. 물가 상승으로 원재료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밀가루부터 팥, 설탕, 식용유, LPG까지 안 오른 게 없다. 1년 전만 해도 1000원에 서너개였던 붕어빵이 올해는 두개로 줄었다. 한편에선 붕어빵이 변신을 거듭한다. 팥소를 대신해 피자소스, 고구마크림, 치즈불닭소스가 맛을 낸다.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 전략이다. 그럴수록 몸값은 치솟는다. 서울 강남엔 한 마리 3000원짜리 붕어빵도 있단다.

    ▼붕어빵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집 근처에 붕어빵 가게가 있는 ‘붕세권(붕어빵+역세권)’에 살면 남부럽지 않다. 앱을 깔아 붕어빵 노점을 찾아다니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붕어빵은 길거리 간식이 아니라 소울푸드다. 추억이자 그리움, 위로이자 행복이다. 누군가는 붕어빵을 먹으며 오늘 하루를 버텨낼 힘을 얻을 것이다. 1000원짜리 지폐를 넣어다녀야겠다. 어디선가 불쑥 ‘맛있는 겨울’을 만날지도 모르니.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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