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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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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시인으로 사는 것-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2-11-09 19: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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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의 삶은 어떨까요. 요즘 시인은 많은데 시를 발표할 지면이 없는 시인들은 모아놓은 시작들로 시집을 내기 때문에 시집도 홍수를 이룬답니다. 시인이라고 다 같을 순 없어서 신문이나 잡지에 원고 청탁을 받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등단을 해도 청탁을 받아보지 못한 시인들도 있지요. 어쩌다 무명 잡지나 동인지에 원고 청탁이 와도 원고료 대신 자작시가 실린 책 한 권만 달랑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보니 시인이 시를 써도 수입이 없습니다.

    몇 년 걸려 산고 끝에 시집 한 권 낸 들 읽어주는 사람도 많지 않고 무명 시인의 시집은 서점에서 받아주지도 않고 설령 받아줘도 팔리지 않으니 구석에서 먼지만 맞다가 반품되기 십상이라지요. 시집 발간하는데 몇백만원의 비용이 드니 시집을 내려면 그 비용을 마련하려고 시인은 무슨 일이든 해야겠지요. 그렇게 사비로 출간한 시집을 지인들과 문인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고 우편발송도 하지요. 책 초면에 자필서명까지 곁들여 말입니다.

    그렇게 시집간 시집이 서재나 거실 탁자 혹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잘 읽히기는 할까요. 행여 봉투도 뜯지 않은 채 쌓여있어 질식하거나 또는 냄비 받침대나 식탁 모서리를 받치는데 쓰이지는 않을까요. 그래도 시집을 보내는 것은 시인은 살아있고 시를 쓰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없어도 시인은 이백 개의 원고지 주둥이마다 사유의 강에서 건져 올린 자신만의 시어를 빼곡히 물려 정성껏 시의 밥상을 차립니다. 먹어주는 사람은 간이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다 숟가락을 놓을지 모르지만 시인은 제 밥그릇을 혼자서라도 꿋꿋하게 먹어 치웁니다. 시중에 국밥 한 그릇과 시집 한 권 값이 같다는데 시집 한 권 내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만 국밥 한 그릇 끓이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그런데 국밥 먹는 손님은 많은데 시집 읽는 독자는 드뭅니다. 국밥은 허기를 채워주고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데 시집은 허기도 채워주지 못하고 속도 데워주지 못한답니다. 그렇다고 시인인들 할 말이 없겠습니까. 국밥은 배를 부르게 하지만 시집은 영혼을 부르게 한다고, 국밥은 속을 데워주지만 시집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거품을 뭅니다. 그렇게 우기면서도 시인은 자꾸 작아지는 현실 앞에 홀로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심정이랍니다.

    더러는 근육이 질긴 고독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시집 열 권 값은 거뜬하게 퍼마시고 비 맞은 우체통처럼 벌겋게 취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낭만과 순수가 어울려 사는 감성의 동네에서 시를 만나 연애 끝에 결혼한 게 후회스러울까요. 그렇게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가난이란 옷을 입고 궁핍이란 명찰을 달고 다니니 창피한 걸까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시란 나무는 누가 등 떠밀어 부여잡은 게 아니라 스스로 매달렸으니 그 나무에 목매달고 죽을 수밖에요. 물론 시인의 삶도 다 같지는 않아서 여유 있고 고상하게 사는 시인들도 있습니다. 능력이 출중해 반듯한 직장에 다니며 좋은 시를 써서 고정 독자들을 많이 확보한 시인들이지요. 그들은 출판사가 시집을 내주고 인세도 챙겨 주고 원고 청탁이 넘쳐 원고료로 가뿐하게 살아간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한 시인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시인이 직업이 될 수 없으니 돈을 버는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시인이라고 이슬만 먹고 거미줄처럼 시를 죽죽 뽑아낼 수는 없는 까닭이지요. 돈 안 되는 시를 붙들고 살아도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역할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반짝거리는 시를 쓰지도 못하고 돈을 벌지도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을 깔고 앉아 쓰는 시도 삶이 탄력을 받아야 건강합니다. 가난을 데리고 힘겹게 걷든 시의 줄기마다 달린 열매가 풍성해 일상을 맛있게 뜯어먹으며 가뿐하게 걷든 다 시인의 길입니다. 그래도 도둑놈보다는 시인이 많은 세상이 낫지 않을까요. 시인은 스스로 역사를 쓰고 가는 사람이니 후대에 여명이 비칠지 누가 알 것이며 그 빛이 당대가 아닌들 어떠하리까. 넘어지지도 뒤돌아보지도 말고 한눈도 팔지 말고 그냥 가십니다. 배가 고프면 부른 영혼의 힘으로라도 말입니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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