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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벌새- 김종민(정치여론부 차장대우)

  • 기사입력 : 2022-11-07 19: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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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였든가 TV에서 벌새를 본 적이 있다. 웅~ 웅~ 하는 소리만큼 강력한 날갯짓을 하며 꽃 속에 머리를 파묻고 꿀을 먹고 있었다. 다 먹고 나면 다시 꽃에서 나와 정지비행을 하며 다음 꽃을 찾았다. “새가 정지비행을 하다니” 놀란 것도 잠시, 이번엔 거의 직각비행으로 경로를 바꾼다. 현란한 비행술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끔 주변에서 벌새를 실제로 봤다는 말을 듣는데 사실 그건 벌새를 닮은 ‘박각시’다. 국내엔 벌새가 서식하지 않는다.

    ▼가장 작은 조류인 벌새류는 몸길이가 10㎝ 전후다. 작은 종류는 5㎝ 정도밖에 안 되는데 무게는 2g에 불과하다. 주로 꽃꿀과 곤충을 먹는데 특유의 빠른 날갯짓에서 나는 붕붕거리는 소리 때문에 ‘허밍버드(hummingbird)’라 불리며, 1초에 많게는 무려 90번 정도의 날갯짓을 한다. 애니메이션 ‘뽀로로’에 나오는 새 해리의 모티브가 벌새라고 한다.

    ▼한창 성장통을 겪는 15살 소녀 은희가 주인공인 영화 ‘벌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은희는 가부장적인 아빠와 폭력적인 오빠, 말썽 많은 언니 등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한다. 가족에게 관심 받지 못하고, 믿었던 단짝과 남자친구의 배신 등으로 외로움과 수많은 상처를 감당하면서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벌새와 닮았다.

    ▼벌새의 날갯짓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하루에도 1000번 가까이 꿀을 빨아야 하고, 계절이 바뀌면 꽃을 찾아 수천㎞를 이동한다. 작은 몸집으로 생존을 위해 쉼 없이 날갯짓을 하는 벌새를 보면 은희처럼 삶의 무게를 견디며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삶이 투영되는 듯하다. 하지만 벌새는 새 중 유일하게 후진비행이 가능하다. 후진하며 다음 꽃을 찾는다. 후진은 바쁘게 앞으로만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다. 쉼이 필요할 땐 잠시 후진하며 바쁘게 지나온 풍경을 다시 살펴보는 건 어떨까.

    김종민(정치여론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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