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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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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빗속 우포늪 탐방- 정창식(세아창원특수강 품질보증실 총괄)

  • 기사입력 : 2022-07-21 20: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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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 계획이 없는 주중 휴일은 느긋하게 시작하는 습관이 있다. 어중간한 아침을 챙겨 먹고 창밖을 바라보니 장대비가 퍼붓는다.

    장맛비의 게릴라성 호우가 쏟아지는 날, 대책없는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집안에서 퍼질러 있기엔 무료하고 싱거운 하루일 것 같아 도전과 모험 정신으로 목적지를 고향 창녕으로 잡았다. 고향은 언제나 마음 한켠에 비워둔 자리이자 정겨운 향수를 불러오는 곳이고 눈에 익은 만만한 길이라 쉬운 걸음이다.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니 18일 창녕 장날이다. 가끔 창녕장날 구경 삼아 들러본 장터에서 ‘수구레국밥’을 맛본 적이 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서민 음식으로 소의 피하지방과 선지로 만든 창녕토속국밥이다. 수구레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게 꽤나 내 식성에 맞아 고향에 가는 날과 장날이 맞아떨어지면 일부러 찾곤 한다. ‘내돈내산’ 맛은 주관적이라 평가는 자유다.

    장대비가 퍼붓기에 장이 설 것인지. 기대반 설렘반으로 빗방울을 가득 안고 창녕으로 달렸다. 시원하게 퍼붓는 폭우와 본포교를 흘러가는 낙동강물은 넘칠 만큼이나 가득하다. 세찬 비소리를 음악 삼아 도도히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면 비오는 날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있다.

    자연이란 불편하기도 하지만 때론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신비스러움을 연출하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사도 굽이굽이 흘러 큰바다로 스며드는 강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활기차야 할 장터가 조용하다. 역시나 이 장대비에 전을 펴기엔 무리였나 보다. 장터 주변에 수구레국밥집이 몇 집이 있지만 장날 당일 현풍에서 내려와 즉석 가마솥에서 끓여내는 천막속 국밥집이 내 식성에 맞는 것 같다. 내가 찾는 그 맛은 오늘은 없다. 부근 한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 때우고 우포늪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전히 폭우는 쏟아지고 있다.

    우포늪 입구에 도착하니 마스코트 따오기 두 마리가 정겹게 반겨준다. 우산을 펼쳐 들고 대대제방으로 향했다. 빗속에 간간히 견학을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1.4㎞의 긴 대대제방을 따라 펼쳐진 우포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하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수생식물들은 앞다퉈 뽐내기 경쟁에 나선 듯 늪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마름, 자라풀, 생이가래, 개구리밥 등이 마치 녹색 융단을 펼쳐 놓은 듯 신비롭다. 그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다양한 철새들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풍경을 선사한다.

    깊은 정적을 깨는 것은 가끔 참방거리며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작은 몸짓과 짝을 찾아 날아다니는 새들의 지저귐뿐. 마치 녹차가루를 뿌린 듯, 한여름 수풀은 물위를 온통 뒤덮었다. 그리고 신비로움을 더하는 물안개까지. 날것의 생명력 가득한 우포늪 앞에 섰다. 퍼붓는 빗속에 우산 하나 받쳐들고 우포의 초록을 감상하며 한참을 보냈다. 청승인지 힐링인지 각자의 판단이 있을 것이지만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이 돋아 즐겁다.

    우리는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 앞에서 철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된다. 늪 전체를 전세 내어 태고적 대자연에 푹 젖은 날이다. 자연 앞에 겸손하게 그 가치를 보호하고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꼭 지켜야 할 자세이다. 그래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주어진다.

    창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어로, 장마로 빙빙 돌아 국도로 달려 보았다.정겨운 농촌 들판이 개발로, 기계화로, 순수함을 간직한 풍경들이 사라지고 있다. 옛 정취가 지워지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변하는 현실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빗속에 달려본 내고향 창녕은 언제 찾아도 정겹고 따뜻한 곳임에 틀림없다.

    정창식(세아창원특수강 품질보증실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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