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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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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경남의 외국인- 안소영(창신대 글로벌 관광경영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22-03-20 20: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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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시 봉황동 패총유적에서는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가 아닌 인디카 타입의 쌀과 서기 14년의 중국 화폐 화천이 발굴됐다. 서기 48년 삼한시대 변한의 변진구야국(가락국) 수로왕은 인도 아유다국의 공주와 결혼을 했다. 1900년 전에 왕이 외국인과 결혼을 한 것이다. 파사석탑 등도 그때 들어왔다. 1950년에 1129일 동안의 6·25전쟁이 일어났고, 이틀 뒤에 UN 안전보장이사회는 UN군 참전을 결정해, 유엔기를 앞세우고 16개국의 전투부대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가난한 나라를 지켜주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핵무기까지 포기하는 노력을 보인 우크라이나와는 달랐다. 그때 체결한 한미우호조약 덕분에 우리는 한 단계 높은 국가안보를 기대할 수 있다. 유엔 참전, 우호조약 등은 우리나라를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그때 협력했던 외국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선진국 대한민국이 있다.

    침략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외국은 우리의 이웃이라 생각했기에 외국이 도와준 만큼, 과거 우리도 도자기 기술과 차 문화 등을 외국에 베풀었다. 김수로왕은 허왕후를 위해 세 명의 왕자 중 둘째 셋째를 어머니의 성을 갖게 했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같은 뿌리라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과거 외국인은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들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았고, 잘해줬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이러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100만명을 넘었다. 특례시 규모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대부분 외국인이 맡고 있고, 경남 산업발전에는 외국인의 역할이 크다. 그런데 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한 코미디 프로는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를 만들었고 한국사회는 공감했을까? 유럽이나 강대국에서 온 관광객은 한국인은 아주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건 또 왜 이럴까?

    그들이 유럽에서 왔건, 동남아에서 왔건 우리나라에 있는 한 인정스럽게 도와줘야 한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이들은 어느 외국인보다 한국을 많이 알고 있어, 본국으로 돌아가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을 평할 것이다.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진 이는 우리를 도와줄 것이고, 반대는 우리를 상당히 곤란하게 할 수도 있다.

    한국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1963년에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를 독일로, 1973년에는 중동으로 건설 노동자를 보냈다. 지하 1200m 깊이의 갱도에서 석탄을 캐고, 시체를 닦고, 뜨거운 모래사막 위에서 건물을 지었다. 그 피, 땀, 기름이 묻은 달러는 대한민국의 고속도로와 다리로 바뀌었고, 가족들은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외국은 성실한 한국인을 칭찬했고, 한국은 발전의 기회를 잡았다. 독일로 갔던 한국인은 양 국가 간 계약을 끝내고도 계속 일했고, 2세들은 독일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해, 독일 대학의 교수도 됐다. 독일은 가난한 나라 국민을 자국민과 같은 교육 기회를 줬고, 차별 없이 대해줬다.

    지금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힘을 모아 강한 한국, 발전된 한국을 만드는데 협력해야 할 때다. 독일의 사례를 능가할 모델을 만들어 양쪽이 발전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의 궁극적인 외국인 노동자 대책이다. 그 모범 사례는 K-지역대학교육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작업 현장에서 익힌 직무 기술을 K-지역대학교육을 통해 한국국가자격기술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꿈, 도전, 성공이 그 교육의 이념이다. 결국 교육 결실은 이 세 요소에서 결판난다. 한국의 성공 과정에 있었던 주경야독의 정신을 외국인 교육에 적용해, 효과적인 외국인 교육을 위한 교수법을 개발해야 한다. 경남이 주도하는 외국인 노동자 교육모델은, 지역 대학과 기업 간의 실질적 산학 협력의 사례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고, 공부할 외국인이 1950년에 우리나라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전투 부대, 5개의 의료 지원국, 39개의 물자 지원국, 3개의 지원 의사 표명국의 자손이라면 우리의 태도는 이미 정해져 있다.

    안소영(창신대 글로벌 관광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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