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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1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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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남용이거나 오용된 문화- 김종원(경남도립미술관장)

  • 기사입력 : 2022-01-11 2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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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처럼 문화라는 단어가 넓고 다양하게 사용된 경우는 역사에서 발견하지 못한다. 심지어 문화와 예술이 때로는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연극, 전시, 음악 등이 바로 문화 그 자체이고, 또한 이에 대한 감상이 바로 문화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사실은 이러한 일들을 중심에 두고 일어나는 일련의 인간의 이성적, 감성적 의례가 문화에 준한다. 그러나 문화를 명확히 정의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동양과 서양에서 문화의 어원적 출발도 상당히 다른 면이 있다. 서양의 ‘Culture’라는 단어의 뜻이 경작, 재배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한 것임을 본다면 분명 외재적 자연의 인간화(人間化)를 말함이다. 동양에서는 먼저 대학(大學)의 명명덕(明明德;본성인 밝은 덕을 밝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말한 사문(斯文)이 그것으로 예악전통(禮樂傳統)의 의례(儀禮)를 말한다. 즉 예와 악이 동물인 인간을 수성(獸性;짐승의 성질)에서 벗어나 인성(人性;인간의 성질)을 이뤄 윤리성을 지닌 사회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핵심으로서, 공자는 입어예(立於禮; 예에서 인성의 수립), 성어악(成於樂;악에서 인성의 완성)으로 이를 웅변하고 있다.

    본래 야만이었던 인간이 그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화되는, 일련의 이성적 자각 과정 즉 내재적 자연의 인간화의 결과가 의례로서 문화인 것이다. 말하자면 수성과 인성의 나뉨은 예(禮)로 대표되는 인간의 사회성 획득, 즉 윤리, 도덕 의식의 확립에서 시작된다는 것으로, 이것은 자연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특별한 이유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질도 여기에 연계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도덕군자, 성인군자란 가장 문화적 완성형의 인간이며, 심지어 모든 정치, 종교, 윤리 행위도 일원적으로 융화돼 더 높은 단계의 문화를 목표함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문화란 인간의 야만적 수성인 탐진치(貪瞋癡)를 이성적 자각을 통해 인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이른바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정심성의(正心誠意)로, 다시 수신제가(修身齊家), 그리고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그 과정이다. 그리고 평천하가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 성취인 문화의 정점인 것이다.

    작금에 이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정책 현상을 보면 참으로 우려된 일들이 있었다. 한 지역의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 지역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구한 역사 속에서 함양돼 나타나는 것이 정체성이고 그 문화인데 한 번의 정책 시행으로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이 여기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면 단순히 박물관, 미술관의 건립과 유치를 부르짖거나, 문화특별시라는 이름을 선포하면 어느 날 그것으로 문화 도시가 되고 문화 시민이 되는 듯이 선전하고 있는 일들을 본다. 그러한 일련의 정책이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그 발상의 출발점과, 또한 그에 따른 과정을 보면 참으로 비 문화적이거나, 반 문화적인 호도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을 보면 인간의 내재적 자연인 수성이 통제되지 않고 정치적 탐욕으로 변해 문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 대중을 호도하나, 정작으로 본인은 그것이 지극히 이성적 자각의 문화적 행위인 양 착각하여 자기(自欺)하고 있음을 모른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은 스스로의 이성적 자각의 통제, 그리고 주변으로부터의 비판적 간섭을 수용해, 내면의 수성을 먼저 다스려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한 자세의 견지가 문화인이 되어가듯이 정책도 여기에 주안점이 두어져야 더 높은 경지의 문화정책이 될 것이다. 문화로서 정치의 최종 완성이 평천하이고 그것은 모든 사람이 지어지선(止於至善), 즉 지극한 선의 경계에 드는 것에 있다. 이는 또한 인간의 합목적성이 자연의 합법칙성과의 융화된 지점에서 이뤄내는 정신적 물질적 조화에 핵심이 있다. 이제 문화라는 이 숭고한 이 단어의 남용이거나 오용을 자가 통제할 때이다.

    김종원(경남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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