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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경청-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기사입력 : 2021-02-21 20: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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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선전담변호사로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한 사건을 배정 받게 되었다. 시골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업주가 장애인 여성을 감금하고 손님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사건이었다. 사실, 사건을 배정 받기 전에 이미 그 사건을 알고 있었는데, 소위 현대판 노예사건으로서 업주가 지적 장애인 여성에게 온갖 폭언과 욕설을 하며 감금시킨 상태에서 다방 일을 시키고 성매매까지 시켰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 TV고발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발 프로그램은 업주 몰래 영상을 촬영하였기 때문에 업주가 피해 여성에게 쏟아내는 온갖 막말과 욕설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고 며칠 동안 잠복 취재하며 피해 여성의 일과를 따라다녔는데, 실제 다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커피 배달을 갈 때는 다방에서 일하는 남자 직원이 오토바이에 태워 갔다가 다시 태워서 데리고 오는 등 피해 여성에게 자유라는 것은 없었다.

    사건 기록을 보기도 전에 업주가 악마라 생각되었지만 업이 변호사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심정으로 사건에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만난 업주인 여성은 내 머릿속에 이미 그려진 악마의 이미지와 멀었고 그저 억세지만 정이 많은 시골 아줌마 같았다. 그리고 업주의 말을 들어보니 분명 나쁜 범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업주는 처음에는 피해 여성이 일상생활이나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지적 장애인인 줄 모르고 고용하였는데, 일반인처럼 일을 하지 못하였고 더욱이 동네 여러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고 다녀서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 다방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업주는 피해 여성을 내쫓았는데, 몇 달 만에 거지꼴로 돌아왔기에 불쌍해서 다시 받아 주었고 또 같은 문제가 반복되어서 동네 사람들 눈치가 보이자 주변에서 알려준 센터 같은 곳으로 보내었으나, 업주가 법률상 보호자는 아니기에 강제 입소는 불가능했고, 피해 여성은 센터에서 머물길 거부하여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업주는 다른 방법을 찾을 만한 능력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업주에게는 그 다방이 유일한 생업인데, 피해 여성 때문에 동네에서 쫓겨나가게 생겼으니 나름 고육지책으로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 다방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감금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업주의 변소에 따르더라도 형법 상 감금, 성매매 알선 등의 처벌은 피할 수 없는 사안이었지만, 적어도 나의 선입견은 깰 수 있었고 예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다시 사건을 꼼꼼히 보았는데, 피해 여성 또한 그 다방에 머물게 된 경위를 업주의 진술과 부합되게 진술되어 있었다. 업주는 범죄 전력이 전혀 없었고 특히 사건이 터지자마자 다방을 그만두었으며, 그 다방을 처분하여 마련된 전 재산인 5000만원을 피해여성을 위해 공탁한 상태였다. 업주는 범죄를 저질렀기에 응당 처벌은 받아야겠지만, 비난 여론 때문에 가해지는 과한 처벌이 아닌,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응하는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달라는 것으로 변론할 수 있었다.

    사실 많은 피고인들은 자신의 변호사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도 있고 교묘한 거짓말도 있다.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그때 거짓말과 변명만 늘어놓는 피고인들을 이미 많이 보아서 의례히 그 다방업주도 그런 피고인들 중 하나라 여겼고 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사실관계와 증거들이 있기에 그 업주에 대한 선입견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막상 만난 업주는 억세고 거칠지언정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고 교묘한 거짓말을 꾸며내기엔 너무 순박한 사람이었다. 다방 업주를 변론하면서 비단 형사범죄뿐만이 아니라 세상살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는 대부분 이런 양면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항상 어느 한쪽 면에만 치우쳐서 사건을 보거나 판단해버리는 일을 경계하게 되었다. 어느 분쟁에서도 “네 말이 맞다”하던 황희 정승처럼 “네 말이 맞다”며 양쪽 이야기를 다 경청(傾聽)하는 것이 선입견과 예단을 깨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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