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7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감동적인 이야기와 슬픈 이야기- 이한영(아동극작가)

  • 기사입력 : 2010-05-21 00:00:00
  •   
  • 합천에 사는 한 친구로부터 자신의 고향 초등학교 은사의 송덕비 제막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은사님은 시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다 10여 년 전에 타계하셨는데, 제자들과 지역민들이 교장선생님의 덕을 칭송하며 이번에 송덕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1700만원 정도의 사업비를 예상하고 기금 모금을 했는데, 그 어른 같으면 나도 내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무려 사업비의 세 배 가까운 4500만원의 기금이 모여 비를 건립하고도 남는 돈은 장학기금으로 돌렸다고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제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스승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도 대단하거니와 스승을 기리며 송덕비를 세우고자 마음먹은 제자들도 훌륭하다.

    대체 어떤 분이었기에 제자들과 지역민에게 그리도 깊은 감명을 주었지? 학교 발전에 큰 공을 세웠나? 아니면 사재를 털어 장학기금이라도 내었을까?

    내 물음에 친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딱히 꼬집어서 이야기할 것은 없다고 했다. 인품이 훌륭한 분들이야 그분만이 아니고… 그러나 모두가 그분을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공직자로서의 청렴한 자세가 아니었을까 하며 입을 열었다. 즉 그 은사님은 가정에 급히 쓸 일이 있어 학교의 못을 몇 개 가져가면 반드시 다음에 읍내에 나가 못을 사서 갚았다고 했다. 또 갱지 한 묶음을 학교에 미리 사다 놓고 사적인 일에는 반드시 그 종이를 썼다는 이야기도 했다.

    요즘은 출장비가 어느 한도 내에서 사용한 영수증을 끊어 넣은 만큼만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적게 쓰건 많게 쓰건 출장일수와 거리에 따라 일률적으로 책정되던 때였는데, 그 교장선생님은 출장비를 아껴 남은 돈은 꼭 학교에 환불시켰다고 했다. 자기가 절약해 남긴 돈은 당연히 자기 돈으로 여기던 때였으니 남들이 보기에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청렴함이 바로 공직자의 본분인 것이니, 그 점을 모두 추앙해 마지않아 세월이 흘러도 그분에 대한 존경심이 새로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졌다.

    근간에 서울시 교육감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는 이야기와 서울지역 교장선생님 150여 명이 방과 후 교육활동이나 수학여행, 급식납품 등의 비리로 적발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세상에 교장선생님들이! 이런 말 속에는 놀라움과 실망감이 함께 들어 있다. 그런 얼굴로 조회시간에 아이들 앞에 서서 어떤 훈화의 말씀을 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뿐인가? 이번에는 또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할 검사 수십 명이 건설업자 스폰서로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향응·접대를 받은 의혹을 받고 수사 중이라니 더욱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폰서란 원래 행사나 자선사업 등에 기부금을 내는 사람이나 방송 따위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광고주를 말하는 게 아닌가? 관행이라 둘러대며 스폰서 접대문화라는 해괴한 말까지 만들어 쓰고 있다. 부적절한 일을 저질러 놓고 어휘의 뜻까지 훼손시키는 언어의 남용에 기가 막힌다.

    그들이 현재의 명성과 지위에 오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것을 한갓 허접스러운 주색 접대 몇 번으로 넘겨버린다면 너무도 억울한 일이 아닌가? 그러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청렴은 공직자의 본분이며 모든 선과 덕의 근원이니 청렴하지 않고 공직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약용 선생께서 목민심서에서 하신 말씀이다. 심기일전하여 참된 공직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은 부디 ‘목민심서’를 반드시 일독, 재독하기를 권한다.

    이한영(아동극작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