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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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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한류음식의 문화적 수출을 위한 제안- 최미선(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0-02-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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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의 시에는 유독 많은 음식물이 등장한다. ‘맨모밀국수 동티미국 산꿩고기 명태 창란젓…. 백석은 이런 음식들을 줄줄이 시에 열거했다. 그리고 그 맛을 ‘슴슴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얼얼하고’라며 일일이 적어 나갔다.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는 전국을 유랑하면서 이렇게 음식으로도 시를 썼다. 백석에게 음식물은 민족이었고, 민족의 문화였다.

    고유 음식이 민족의 문화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즈음, 우리 전통 음식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김치와 불고기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고, 궁중 사극 안에서 재현된 갖가지 진기한 궁중음식에도 주변국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니 정말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젠 막걸리까지 수출 호황 품목이라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생각지 못했던 전통술까지 외국에서 찾아주는 품목이 되었다니 그저 북 치고 장구 치고 좋아만 할 게 아니라, 한류 음식이 진정한 민족 문화상품으로 알려지도록 관계부처 혹은 관련업계에서는 각별한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얼마 전, 외국인 막걸리 시음 광경을 TV를 통해 우연히 보게 되었다. 외국인이 막걸리를 막 들이켜려는데, 옆에 있던 우리나라 청년이 “막걸리는 이렇게 마시는 것”이라며 자기 손가락을 술잔에 집어넣어 휘젓고는 마실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지나치게 위악적이고 불결해서 저절로 얼굴이 돌려졌다.

    막걸리가 아무리 ‘막 거른 술’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해도, 불결하게 만들었거나, 위생의 문제를 아주 간과했거나, 술로서의 품격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 나름대로 주도(酒道)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

    힘든 농사일 중간에 논밭가에서 새참으로 무람없이 한 잔을 들이켤 때, 자기가 마실 술에는 손가락으로 저어 마시는 그런 일이야 있었겠지만, 다른 사람이 마실 술에 손가락을 넣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는 도저히 그냥 봐줄 수가 없는 문제였다. 흥겨운 분위기를 위해서라는 변명이 덧붙여진다 해도, 민속주(民俗酒)의 세계화를 위한 어떤 표준 같은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나라가 음주문화를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금방 그 답이 있다. 포도주를 마실 때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먼저 와인잔부터 찾고 있지 않은가. 마치 와인잔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혹 맥주는 어떠하며, 또 다른 외국의 전통술을 즐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술 맛을 위해서 음주문화가 만들어졌겠으나,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각 나라의 술에 걸맞은 문화적 표준을 즐기고 있으며, 어느새 이런 문화적 표준에 길들여져 있는 것을 수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단일한 품목 하나를 수출하는 데서 나아가 막걸리의 맛과 흥과 분위기에 돋보이게 하는 미학도 문제 삼아봐야 할 것이다. 문화적인 재생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포도주 하면 와인잔을 먼저 떠올리듯이 막걸리 하면 그에 걸맞은 음주문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음식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함께 문화를 수출하려는 노력과 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최미선(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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